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98

신발, 나를 담다 신발, 나를 담다 사람들은 대개 마주 앉는다. 밥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 이야기를 나눌 때. 활발한 이야기가 오가는 테이블 아래로 신발들도 마주 본다. 한 번도 빨지 않아 검정 때가 가득 묻은 운동화 맞은편엔 꼼지락대는 발가락 사이에 매달린 쪼리가 있다. 나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주로 운동화만 신는다. 내 운동화들은 대부분 더럽다. 새 신발의 빳빳함보다는 내 땀으로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신발이 좋아서다. 내 친구는 슬리퍼를 자주 신는다. 운동화는 발이 답답하단다. 종류도 다양하고 슬리퍼치곤 고가인 것들도 있다. 문득 신발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의 정갈함, 오래된 신발도 정성스럽게 신을 때의 소박함, 운동화의 쾌활함은 그 신발들에 은은하게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안.. 2016. 11. 21.
막내삼촌 10년 전이었다. 봄이 파도처럼 밀려오려던 3월, 막내삼촌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렸다.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가버렸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외가 친척이 사는 전남 광주와 고흥을 찾았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잘 돼있어서 4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당시엔 4~5시간은 기본이었다. 지루할 법도 했지만 조부모님과 삼촌들을 만날 생각에 마냥 신이 났었다. 내게는 삼촌이 세 명이 있다. 막내삼촌을 비롯한 삼촌들과 함께하는 일주일은 여름을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였다. 당시 삼촌들은 주택 2층에서 살았다. 누나와 매형, 조카들이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2층 난간에 기대어 서서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곤 했다. 그럼 나는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부터 차창을 열고.. 2016. 11. 21.
영화 <그랜토리노>를 보고 저는 영화의 줄거리가 복잡하거나 결말이 찝찝한, 열린 결말을 가진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까칠했던 주인공이 갑자기 교화되는 줄거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업시간에 본 그랜토리노는 참 단순하고 깔끔한, 취향에 맞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제목 ‘그랜토리노’는 70년대 포드에서 제작한, 묵직한 무게의 자동차입니다. 미국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보수적 자존심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랜토리노에 주인공 ‘코왈스키’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코왈스키’엔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담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제로 미국의 공화당원이자 골수 보수주의 입니다. 그리고 영화계에서도 미국의 모든 남성상을 대표합니다. 배우로 데뷔해 메가폰을 잡게 된 그의 영화들은 보통 한.. 2016. 11. 21.
서순희 허리우드 악기사 대표 순희. 이름 참 순박하다. 하지만 그를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영어이름 '힐러리'가 훨씬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꽃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몸에 착 달라붙은 가죽점퍼. 얼굴을 덮을 것 같은 선글라스. 서순희(54) 대표. 그는 동인천역 옆 '허리우드 악기사' 주인이다. 며칠 전, 그의 악기사 2층으로 한 무리의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쌍꺼풀이 진 여성들이었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서 대표가 건넨 건 20kg 쌀 13포대와 롤케익 13개다. 이날 성금은 서 대표가 이끄는 다문화여성밴드 '화려한외출'의 공연수입으로 마련한 것이다. 10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아줌마밴드'를 결성한 서순희. 그는 "인생시기별 인생매뉴얼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웃음지었다. "30대는 사진.. 2016.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