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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나의 길4

가을비 결혼, 10주년 가을비 결혼. 10년 전인 2006년 10월 22일 결혼하던 날, 가을비가 내렸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창밖의 가을비를 바라보며 마음 속에도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결혼한 뒤 인천일보는 반으로 쪼개졌고, 휘청거리는 회사와 함께 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고, 내겐 병마가 찾아들었다. 아이는커녕 사느냐마느냐의 갈림길까지 치달았다. 아내가 앓는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고 마음을 돌리기까지 만 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결혼 5년 만에 아내가 직장을 접고 마침내 '별'이를 가진 것이다. 고마웠다. 세은이가 태어난 뒤 아내와 내 사이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다 마주보고, 가끔은 한 곳을 함께 바라보다 또 다시 충돌하고…. 그렇게 다시 5년. 결혼 10주년인 .. 2016. 10. 23.
共明(공명) 共明(공명). 잘 아는 지인께서 '호'를 지어주셨다. 共은 '함께, 공손, 맞이하는, 한가지'의 뜻을 가진 한자다. 明은 '밝다, 밝히다, 밝게, 나타나다, 깨끗하다'의 의미다. 그 분은, 가장 단순하게 '더불어 밝게'(세상을 살아간다)'란 의미이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중의적인 뜻을 품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제 갓 50을 넘은 놈이 주제 넘게 무슨 호를 쓰냐고 생각했고, 다른 분들도 건방지다고 하겠으나 앞으로의 삶을 제2의 이름인 '호' 처럼 살아가라 는 뜻으로 받들어 마음 속에 굵은 글씨로 새겼다. '共明 김진국'. 2016. 10. 8.
가을날의 저 푸른 하늘은... 며칠 전, 정확히 9월 19일 인천역으로 가다 문득 바라본 하늘이다. 1994년 인천일보에 입사한 이래 23년 간 개항장 앞길을 오가며 출퇴근을 했다. 부평에서만 놀던 내게 출근길에서 만난 차이나타운은 전혀 새로운 인천의 얼굴이었다. 20대 초중반 거의 부평이나 주안에서만 놀던 나는 20대 후반부터 회사를 중심으로 한 개항장, 신포동 일대로 무대를 옮겨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사람도 만났다. 첫 출근 하던 날은 명징한 가을 아침이었다. 그 때 나를 비추던 가을날 아침햇살의 강렬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눈 부신 아침의 태양은 창창한 나의 미래를 비쳐주는 서광처럼 느껴졌었다. 그렇게 50대가 되는 동안 무수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감, 갈등을 겪었다. 저 아침햇살을 맞으며 늦깎이 결혼도 했고 늦둥이.. 2016. 9. 23.
어느 중견 기자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상의 많은 부분이 잘못돼 있으며, 자신이 그걸 개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자본가보다는 노동자의 편에, 권력자보다는 힘 없는 서민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가 된 이유도 잘못된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며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싶어서였지요. 그는 발로 뛰는 기자이고 싶었고, 어느 정도 실천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부에서 시작해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문사의 여러 부서를 거치며 기자의 관록을 쌓아 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의 몸도 마음도 강물처럼 흘러왔습니다. 절벽에서 방금 떼어낸 날카로운 원석 같던 성격은 .. 2014.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