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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5

김진국의 세상바라기-'올해 관광도시 강화'와 고려건국 1100주년  '의로운 항전'을 위해 고려가 선택한 땅은 강화도였다. 세계인들이 몰려들어 교역하며 다양한 사상과 가치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였던 고려.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내고 오묘한 빛이 흐르는 청자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문명국. 그렇지만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 하는 몽골제국의 거침없는 진격 앞에서 고려는 종묘사직을 뒤로 한 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가 개경(개성)을 떠나 강화로 수도를 옮긴 '강화천도'는 고려라는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려가 강화도에 머문 39년의 기간을 '강도(江都)시기'라 불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232년~1270년, 고려는 세계문명사에 길이 남을 유산을 남긴다. '상정고금예문'이란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으며.. 2018. 1. 10.
강화의 자연환경과 교통·산업 ▲ 코넬리어스 오스굿이 1947년 보았던 강화도와 70년 뒤인 현재의 강화도는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당시 강화도가 직조산업과 농업, 어업의 도시였다면 현재는 역사문화관광도시 성격이 강하다. 비가 내리던 7월31일 고려궁지 뒤쪽 송악산에서 강화읍내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오스굿은 선두리를 통해 강화도와 우리나라를 보려고 노력했다. 사진은 선두5리 전경으로 갯벌위에 보트들이 있고 농가는 펜션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울퉁불퉁한 지형… 포구까지 뻗은 자갈길엔 낡은 버스 몇대만 울타리 속 '인삼'·고품질 '강화섬쌀', 지역 대표 먹거리로 우뚝 강화도 '고려궁지'에 비가 내렸다. 궁지 위에 펼쳐진 연두빛 잔디 위로, 송악산에 서 있는 나뭇가지들 위로 장맛비가 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눈에 .. 2017. 11. 29.
코넬리어스 오스굿 '코넬리어스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5) 세계적인 인류학자로 미국 예일대교수를 지냈다. 그가 1951년 펴낸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는 문화인류학자의 눈으로 강화도를 통해 우리나라를 최초로 주목한 연구서다. 1947년 강화도에서 현지 조사를 했던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굿은 한국인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영국인들과 달리 오히려 감정적 판단을 하는 아일랜드인과 유사하다며 '오리엔탈 아이리시'라고 불렀다. 오스굿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무천, 영고, 동맹 같은 축제를 통해 가무에 도취했던 역사가 있다"며 한국인들이 통음하고 포식하고 노래를 잘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구강 가학적 경향을 가진 오럴 사디스트(oral sadist)이며 입으로 .. 2017. 11. 12.
강화도 동막 해변의 겨울 2017.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