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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인천의 언론 대중일보 꽃샘추위가 스쳐 지나간 봄날의 신포동 하늘이 해맑다. 이런 날은 평소 카키빛을 띠는 인천 앞바다의 빛깔도 짙푸르게 반짝일 것이다. 인천의 오래된 양식당인 '등대경양식'은 누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 외항선원들이 드나드는 '시멘스클럽'이 붙어 있다. 클럽을 등지고 신포동 쪽을 바라보는데 건너편으로 삐죽하게 솟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평면으로 볼 때 정사각형이 아닌 마름모꼴 형태를 한 이 건물은 한눈에 봐도 요즘 스타일은 아니다. 1층에 '초록달팽이', '수미포차'란 주점이 있고 2층은 'AND 7080' 노래방, 3층은 '천지전통마사지24'란 간판을 내건 이 건물의 주소는 중앙동 4가 8의 33. 이 조금은 오래돼 보이는 7층 건물이 반 세기 전 집단지성 생산과 사회개선 열정으로 가득찬 '.. 2017. 3. 27.
전등사 n 템플스테이 햇살이 사찰 지붕위로 나풀나풀 내려 앉은 어느 봄날 찾은 강화도의 '전등사(주지 승석스님)'는 따사로웠다. 보물 178호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장'의 표정에까지 봄햇살이 깃들어 있었다. 사찰을 찾은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경내에 벗꽃처럼 흩날렸다. 전등사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천년고찰',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고 지켜낸 사찰', '익살과 풍자 자비의 전설'을 품은 절이다. 신화와 호국의 정기가 어린 곳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봄 속의 전등사만큼 좋은 봄소풍 장소도 드물 것이다. 이번 주,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전등사를 찾아보자.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천년고찰 전등사는 단군신화의 전설을 품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 사찰이다. 전등사는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 2017. 3. 18.
웃터골운동장과 제물포고등학교 "퍽!" "퍽!" "따-악!" "와~아" 3월 초순 일요일 한낮의 제물포고등학교 운동장. 네이비·붉은 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뒤엉켜 야구경기를 하고 있다. 선수들이 달리고 미끄러지고 하면서 운동장 위로 뽀얀 먼지가 일어난다. 관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함성과 탄식은 자유공원광장에까지 들릴 정도로 우렁차다. 제고 운동장은 크게 3개로 나눠진 모습이다. 야구연습을 하는 본 운동장, 테니스코트장, 농구장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운동선수들의 구호가 들리기 시작한 때는 1920년이다. 1919년 3·1운동에 놀란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문화정책'이란 것을 펴 나간다. 제고 운동장 자리에 2000여평에 이르는 공설운동장을 조성한 때가 이 시기다. 그러나 실은 인천스포츠를 .. 2017. 3. 8.
인천미두취인소 한낮엔 따뜻했는데, 밤이 되자 찬바람이 불어온다. 2월 말, 일교차 큰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붉은 벽돌의 국민은행은 셔터를 내렸다. 인천 중구 제물량로 196 'KB국민은행 신포동출장소'는 '인천미두취인소'가 있던 자리다. 미두(米豆), 말 그대로 쌀과 콩, 즉 곡물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개항기 인천에 진출한 일본상인들은 한국의 쌀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마수를 뻗친다. 1896년 4월 1일 일본인 미곡상 14명은 미두취인소 설립 허가를 따낸다. 우리 정부가 아닌 인천항에 있던 일본영사관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결과였다. 5월5일 자본금 3만원으로 문을 연 미두취인소의 거래는 증권거래와 비슷한 형태였다. 증권 거래가 채권,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을 대상으로 했다면 미두취인소는 미곡을 대상으로 했다. 거래는 매.. 2017.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