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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인천미두취인소

by 김진국기자 2017. 3. 7.

한낮엔 따뜻했는데, 밤이 되자 찬바람이 불어온다. 2월 말, 일교차 큰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붉은 벽돌의 국민은행은 셔터를 내렸다. 인천 중구 제물량로 196 'KB국민은행 신포동출장소'는 '인천미두취인소'가 있던 자리다. 미두(米豆), 말 그대로 쌀과 콩, 즉 곡물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개항기 인천에 진출한 일본상인들은 한국의 쌀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마수를 뻗친다. 1896년 4월 1일 일본인 미곡상 14명은 미두취인소 설립 허가를 따낸다. 우리 정부가 아닌 인천항에 있던 일본영사관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결과였다. 5월5일 자본금 3만원으로 문을 연 미두취인소의 거래는 증권거래와 비슷한 형태였다. 증권 거래가 채권,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을 대상으로 했다면 미두취인소는 미곡을 대상으로 했다. 거래는 매수물량을 거래 당사자 간에 정리하는 선물거래였는데 취인소가 인가한 중매점을 통해야 거래가 가능했다.

문제는 미두취인소가 한국경제를 수탈하는 첨병이었다는 사실이다.

고 신태범 박사는 저서 <인천 한 세기>에서 "쌀만이 아니라 돈도 함께 빼앗는 기구"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미곡은 우리나라 중계인을 거쳐야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미두취인소가 생기면서 일본상인과 일본인정미업자가 직접 거래를 하며 유통을 장악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두취인소가 투기장이 됐다는 사실이다. 현물이 없어도 석당 1원인 보증금만 중매점에 예치하면 누구나 거래가 가능했다. 아무 때나 처분할 수도 있었다.

고 신태범 박사는 "1915년 이후 15년 동안 합방 이후 벼슬길도 막히고 장사도 못 하게 된 시골의 대소 지주들이 돈을 벌어보겠다면 인천으로 몰려 들었다"며 "미가변동을 예측하려면 정부 식량정책, 경제동향 판단, 천기예보 분석 등 정보와 자료가 필요한데 미두꾼들은 아는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몇몇 중매점이 단합하면 미가를 조작할 수도 있었다"고 <인천 한 세기>에 쓰고 있다.

급기야 땅문서를 보증금으로 받는 편법까지 판치면서 고객의 90%인 한국인들은 대부분 가산을 탕진할 수밖에 없었다.  

미두취인소는 미가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32년 조선취인소 인천지점으로 격하된 이후 광복과 함께 사라졌다.  

실제 미두의 영향으로 인천항 일대는 요릿집, 주점, 여관 등의 향락 산업이 번창했다.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 전문위원은 "미두취인소의 고객은 90%가 한국인이었고, 이들이약 15년 간 미두장에 바친 돈이 수억 원이었다"며 "피해가 확산되자 당시 <개벽>에는 '인천아 너는 어떤 도시'란 제목으로 인천미두취인소를 '피를 빨아 먹는 악마 굴이요, 독소라 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옛 미두취인소 주변은 오래된 선술집들이 즐비하다. 미두취인소가 있을 당시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갈 곳은 선술집 뿐이었으리라. 신포주점, 대전집, 다복집, 염염집 등 신포동의 오래된 선술집 자리에 20세기 초중반 무엇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웬지 허름한 술집이 있었을 거란 상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신포주점은 신포국제시장 들머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50년 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포주점은 고정메뉴가 없다. 생선, 조개, 두부, 꽃게 등 그 때 그 때 주인의 컨디션에 따라 만들어주는 게 그날 메뉴다. 가게 안엔 문인, 화가, 시인들이 술값대신 주고 간 작품들이 걸려 있다.  

대전집은 대전에서 혈혈단신 올라온 오정희 여사가 1972년 문을 열었다. 동치미와 족발, 보쌈이 주 메뉴다.  
대전집 건너편에 다복집이 있다. 다복집은 '스지탕'으로 유명하다. 스지는 '힘줄'의 일본말. 소의 사태살에 붙어 있는 힘줄이다. 오랫동안 삶은 스지에 양념을 해서 크게 자른 감자와 먹는 스지탕은 다복집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별미이다.  

염염집은 전이 맛 있는 술집이다. 모둠전, 굴보쌈, 계란말이 등 소박하지만 우리네 입맛에 딱 맞는 안주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