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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와 하와이

9.인하공과대학교의 탄생

by 김진국기자 2016. 9. 23.


애국애족 뜨거운 동포애'민족사학'설립 일조


 

 

▲ 인하대학교는 이승만 박사가'미국의 MIT 같은 공과대학을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인하공과대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했다. 1954년 10월6일 인하공과대학 개교식장 입구 전경./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사진 위)

 

▲ 이승만이 한성정부의'집정관총재'로 선출된 다음 호놀룰루의'한인기독학원'(이승만 설립)에서 개최된 이승만 박사'대통령'취임 축하행사. /사진출처=<이승만의 삶과 꿈>(사진 아래)

 

 

 

 

 

 '실내체육관인 '하와이교포기념관'은 우리 대학 창학의 발판을 마련한 하와이동포의 정성어린 땀이 깃들여진 기념관으로 인하학원 제12대 이사장인 한진그룹회장의 재정적 지원과 하와이교포의 성금으로 1972년 6월에 착공하여 1973년 10월30일 준공했다 … 후략.'
인하대학교 실내체육관 앞 작은 푯말은 인하대 설립이 하와이교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하공과대학교(현 인하대학교) 설립의 종잣돈이 바로 하와이 한인이민자들이 낸 '15만 달러'였다. 그러나 이 돈은 말 그대로 종잣돈이었을 뿐이다.
인하대 설립엔 이 15만 달러 외에 6천만 환의 정부출연금, 2천774만 3천249원의 국민 기부금, 인천시의 시유지 기부 등이 보태여졌다. 인하대를 가리켜 '민족사학'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처럼 하와이 이민자들의 기부는 물론, 온 국민들의 염원이 더해져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금은 처음 예산으로 잡은 515만 500달러(3억 903만 환)의 30%엔 못 미치는 액수였다. UNKRA, UNCAC, 한미협회 등 외국기관의 원조금 330만 달러가 들어오지 않은 데다 민간기부금 역시 처음 목표액에 한참 모자랐던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3년 11월15일 하와이이민 50주년 기념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50년 전에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리고 울며 방황할 적에 하와이에서 한인 이민의 길이 열려서 인천 항구에서 처음으로 한인의 이민배가 떠나 호놀룰루 항으로 가게 된 것이다 … 중략 … 인하대학을 세워서 50년 기념에 영구한 기념물을 만들려고 하는데 인천과 하와이새에 미국과 연락하는 우의상통의 길을 만들기 위하여 이름을 인하라고 하고 … 중략 … 이 학교는 미국의 MIT와 같이 공업대학을 만들어 우리나라 공업과 기술 방면이 여기서 나오도록 하자는 것인데 정부에서나 민간에서나 성심으로 도와서 우리나라 제일가는 유력한 대학이 될 것이다 … 하략.(단기 4286년 11월15일 대통령 리승만)'
이 기념사 전문엔 한인 이민자들의 인천에서 하와이로의 이주, 하와이 교포들의 삶과 애국활동, 이민 50주년에 따른 인하대 설립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인기독학원의 매각대금 15만 달러의 인하대학 설립기금화와 한인기독학원을 후원한 하와이 노동자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인하대학의 영원한 기록으로 될 것이란 내용도 있다. 한인기독학원은 일제강점기 하와이 현지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며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다음은 1954년 2월8일 김법린 문교부장관의 담화 '인하공과대학 설립절차를 마치고'의 일부이다.
 '전략 … 본 대학의 재단 확립을 위해서는 하와이 동포들의 눈물겨운 기부금 15만 불과 정부보조금 100만 불 및 인천시 기증 교지 12만여 평을 필두로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공무원의 갹출금, 대한중석주식회사, 화신산업주식회사, 대한금융단 등 각 기관, 전국 방방곡곡으로부터의 기부금 등 총액 2천700만 환이 넘는 거액이 단시일내에 수집되어 이제 2억5천만 환의 재단을 구성하게 된 것을 우리 교육사상에 일즉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사로서 우리 교육기관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치하하여 마지 않는 바입니다 … 후략.'
하와이 현지 한인들이 기부한 15만 달러는 하와이 현지의 한인교육기관 한인기독학원을 1947년 폐교하면서 마련한 자금이었다. 이 기금이 인하대 설립에 보태여졌기 때문에 인하대학교의 창학정신에 한인기독학원의 독립정신이 배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와이 교포들의 인하대 설립자금은 1962년 11월17일에서야 비로소 상업은행에 신탁됐다. 하와이 교포들은 자신들의 기부금으로 인하대에 하와이교포기념관 건립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1963년부터 국내 경제사정은 급격히 악화됐고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념관 건립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부족한 건축비를 하와이에서 다시 모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1968년 한진그룹이 인하대를 인수하면서 하와이교포기념관을 '실내체육관'으로 짓기로 한다. 하와이교포기념관은 이처럼 한진그룹의 재정적 지원과 하와이 교포의 성금이 결합해 탄생한다.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 '인하대와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그 지지자들은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운영된 한인기독학원의 발전적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인하대 설립을 추진했다"며 "한인기독학원의 매각대금, 즉 하와이 교포성금 15만 달러는 인하대의 창설, 막대한 국고의 지원, 전국민의 성금을 상징적으로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다.
인하대와 하와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피와 땀이 서린 15만 달러는 지금 인하대 교정에서 하와이교포기념관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호놀룰루(하와이)=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