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6인하저널리즘

편지에 대한 단상

by 김진국기자 2016. 11. 27.

을 쓴다는 건 늘 쉽지 않다. 쓰고 싶지 않은 주제를 부여잡고 낑낑대는 것도 고역이고, 소재를 찾는 일도 마치 방구석 어딘가 떨어진 바늘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찾는 것처럼 막연하다. 고치고 고쳐도 마음에 안 드는 글은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럽다. 글쓰기에 남들이 보기에 답답하리만치 오래 걸리는 내겐 쓰는 과정도 고통이다. 이런 나도 즐거이 글을 쓸 때가 있는데 일기와 편지를 쓸 때다. 특히 편지를 쓸 때가 좋다. 우러나온 진심을 담을 수 있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다. 편지를 쓸 때도 많은 고민을 하고 준비도 해야하지만 이는 행복한 과정이다.

 편지지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편지쓰기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건 너무 어려보이지 않을까? 이건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이나? 등등 여러 생각을 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색상이나 그와 어울리는 색 혹은 나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색을 찾아보기도 한다. 기나긴 고심 끝에 편지지를 고르면 책상에 각을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글 쓸 준비를 한다. 흐리멍덩한 색의 샤프나 연필보다는 펜이 좋다. 또렷한 색과 지워지지 않는 그 속성이 나의 진심을 담기에 적합하다. 눈을 감고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한번 쓱 정리를 하고서 서걱서걱 쓰기 시작한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펜은 지우개로 지울 수 없으니까. 화이트나 교정부호는 편지지가 지저분해져서 싫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듯 보기 좋은 편지가 감동도 더 한 법이다. 심혈을 기울여 쓰고 나선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최종 검토를 하고 편지가 마음에 들면 이를 칼같이 접어 봉투에 딱 맞

게 집어넣는다. 내 편지를 읽은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답장은 언제 올까 하는 등의 기분 좋은 생각에 잠긴다.

 편지를 기다리는 일과 받는 순간은 모두 설레고 행복하다. 편지가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것 또한 묘미라 할 수 있다. 예상보다 일찍 온 편지는 더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좋고, 늦게 온 편지는 애타던 마음을 달래줘 심한 갈증 끝에 시원한 사이다 한 캔 들이킨 것 같은 시원함을 준다. 올 줄 알았던 편지보단 예상치 못한 편지가 기분이 좋다. 그리웠던 이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같은 기분이다.

 편지를 받으면 당장 뜯어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이를 억누른다. 받는 즉시 우악스럽게 봉투를 뜯어 아무 곳에서나 읽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편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같아 조용히 경청해야 한다. 편안한 집이든 햇살이 잘 비치는 고요한 공원의 벤치든, 혹은 부드러운 커피향이 퍼지는 카페든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다. 마땅한 공간을 찾으면 혹여나 봉투가 찢어질까 조심조심 뜯어 살살 편지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몇 번이고 곱씹어서 읽는다. 다 읽은 편지는 고이 접어서 봉투에 넣고 편지보관함에 넣는다. 쌓여가는 편지만큼이나 내 마음 어딘가에 행복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메신저와 SNS가 성행하고 있다. 손가락만을 두드려 글을 쓰고 1초도 걸리지 않아 전송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확인이 가능하다. 이처럼 편리한 게 없다. 이에 반해 편지는 직접 써야하고 배송시간도 길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불편하다. 그래도 난 편지가 좋다. 편지지를 고를 때부터 시작된 고민과 정성이 담긴 편지는 그의 숨결이 닿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며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니까. 01로 변환된 실체가 없는 디지털 문자는 어딘가 차갑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따듯한 느낌의 종이가 인간적이다. 디지털 시대에 편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 때문이 아닐까.



/신우중 

'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 > 2016인하저널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태의 미래를 엿보다  (0) 2016.11.26
후회 없는 선택  (0) 2016.11.26
영화 <어바웃 타임>에 관하여  (0) 2016.11.22
침묵의 울림  (0) 2016.11.22
기회가 저물기 전에  (0) 2016.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