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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조선상업은행과 은행나무거리

by 김진국기자 2016. 11. 20.

1920년 벽돌조 2층 건물 신축·1989년 철거

이후 26여년간 '동인천등기소' 자리

50~60년대 다국적군 몰려들던 거리엔 은행잎만 덩그러니

 

'금관의 장식' 같은 은행잎들이 겨울바람을 타고 일제히 흔들린다. 은행잎처럼 노란 트럭이 인도에 바짝 붙은 채 천천히 지나간다. 화살표경고등을 켠 트럭은 바닥에 입을 댄 채 차도에 쌓인 은행잎들을 집어삼킨다. 하버파크호텔과 인천아트플랫폼 사이 6차선 '제물량로'는 지금 샛노란 은행잎들이 만추의 절정을 노래하는 중이다.

제물량로 중간 쯤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벽돌색 타일로 마감한 건물 외벽에 걸린 플래카드가 차가운 바람을 맞아 펄럭거린다.

 '인천지방법원 등기국 개청에 따라 2016.3.1부터 동인천등기소 및 주차장을 폐쇄합니다. 인천지방법원'.

건물입구는 셔터가 내려져 있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빨간색 자전거가 방치된 모습이다. 인천 중구 항동513(제물량로 195). 이 건물은 지난 2월 말까지 '동인천등기소'였다. 그러나 3월 동인천등기소가 이전한 이후 굳게 문을 닫고 있다.

1989년까지 이 자리엔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 건물이 있었다. 1920년 벽돌조 2층으로 신축한 건물이었다. 현관과 벽을 덧쌓은 징두리 부분은 석조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으로 처리하고, 모서리 중앙부에 돔을 얹은 르네상스식 건물이었다. 러스티케이션은 석재의 가운데 부분을 거칠게 처리하거나 선명하게 튀어나와 보이도록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장식 석공술이다.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은 이후 줄곧 이 자리에서 업무를 보다가 19561월 경동인천지점 출장소로 이전한다.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 건물은 후 인천해무청 청사, 대한해운공사 인천지점, 조양상선이 사용하다 1989년 철거된다. 이 때 동인천등기소가 자리를 잡았고 26년여만인 지난 3월 이전해 나갔다.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은 인천우체국과 함께 항동의 자랑거리였다.

 동인천등기소 건너편 KB국민은행 자리엔 미두취인소가 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 미곡시장을 장악하려고 만든 기관이다. 이후 한국은행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KB은행이 고객들을 맞는 중이다. KB은행 뒷편으로 한 블록 건너 '중화루' 옆 고깃집은 50년대 후반 '대인약방'이란 대형약국이 자리했었다.

김학균 인천예총 사무처장은 "대인약방 앞엔 아침이면 약을 배달하려는 배달꾼들의 자전거가 2,30대씩 늘어서 있었다""맞은 편 중국음식점 중화루는 해군헌병대가 있던 자리였다"고 회상했다.

 동인천등기소에서 제물량로를 건너 대각선으로 '고려상사'란 무역회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 '등대경양식'은 인천의 원조격 경양식집이다. 이 식당의 여주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기도 하다. 지금은 송도로 간 '국제경양식' 역시 처음엔 신포동에 있었다. 이후 신흥동으로 갔다가 지금은 송도국제도시에서 고객들을 맞고 있다. 국제경양식 주인은 미8군 조리사 출신이다.

 1950년대~1960년대 고려상사 뒤편엔 서너 개의 음악클럽이 성업 중이었다. 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즐겨찾는 '외국인 전용술집'이었다. 다국적군 소속 군인들은 이 곳에서 재즈, 블루스와 같은 고향의 음악과 위스키, 맥주 같은 술을 벗 삼아 향수를 달랬다.

 인천이 음악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같은 다국적군 클럽에서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태동했기 때문이다. 가수 송창식도, 키보이스의 김홍탁도 신포동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훗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가수들로 성장했다.

  다국적군에겐 놀이터였으나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었다. 양엘레나. 흔히 '양공주'로 불리던 술집 여급들이다. 양엘레나들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웃음을 팔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때때로 군인들은 팁 대신 럭스비누나 럭키치약, 말보로담배를 건네주었다. 양엘레나들은 이를 신포시장이나 양키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손에 쥔 몇 푼의 돈으로 하루하루를 먹고 살았다. 양키시장은 그렇게 형성된 국제시장이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제물량로를 걸어간다. 가을은 이제 떠나가는 것일까. 저 만치서 낙엽수거트럭의 뒷편에 붙은 화살표경고등이 노랗게 명멸하고 있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