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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한 자리서 세계여행

by 김진국기자 2016. 10. 26.

 
▲ '제물포구락부'는 개항 이후 들어온 각 국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현 건물은 1901년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것으로 117년 된 건축물이다.
 
 

인천 중구의 '제물포구락부'

외국인 사교클럽, 117년이 흘러 국제문화교류장으로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 … 1901년 6월22일 오픈
 
광복 후 미군장교 클럽 → 6·25전쟁 땐 북한군 대대본부 
지금은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거듭나 독일책 전시 중 

 

 

을비가 내렸다. 빗방울들이 초록빛 나뭇잎들 위로 송알송알 맺혔다. 얼마 안 가 잎들은 황갈색으로 변색할 것이다. 설악에서 시작한 단풍의 파도는 지금 자유공원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중이다.
 

공원 중턱 '제물포구락부'의 뾰족한 '맨사드지붕' 처마 끝에서도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 고풍스런 건물은 한 자리에서 117년 동안 가을비를 맞아왔다.

오두막집 같은 입구로 들어선다. 짙은 밤색의 마룻바닥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낸다. 커다란 창문을 반쯤 가린 자주빛 커튼과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실내는 중세시대를 다룬 유럽영화에서 본 듯한 풍경이다. 양주와 글라스를 진열해 놓은 바(bar)도 눈에 띈다. 제물포구락부가 처음 지어졌을 땐 당구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벽면에 붙은 여러대의 모니터에선 제물포구락부에 관한 스토리텔링과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마침 이곳에선 지금 '독일의 달'을 맞아 '독일책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가 운영 중인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제물포구락부는 매년 6월~12월 '국제문화교류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찐(Sabatin)이 1900년 설계, 이듬해 6월 22일 완공했다. 지상1층, 반지하2층의 벽돌조 건물이다.  

제물포구락부는 개항 뒤 물밀듯 들어온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이었다. 구락부는 클럽(Club)을 일본식 가차음이다. 개항 뒤 인천엔 외교 각국의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가 설정된다. 1889년 이들은 공동이익을 위해 자치의회격인 '신동공사'(紳董公司·Municipal Council)를 세운다. 2년 뒤인 1891년 8월, 신동공사 회원국들은 원활한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금의 관동 1가 8의 2번지에 1층 양식건물을 짓는다. 그러나 회관이 협소하다는 의견에 따라 새로운 공간을 짓기로 하고 설계를 사바찐에게 맡긴다. 사바찐은 각국공원(자유공원), 인천해관,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독립문 등 개항기 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이다. 

1901년 6월 22일 오후 4시30분 주한 미군 공사 알렌의 부인이 건물 손잡이에 은제열쇠를 넣고 오른쪽으로 돌림으로써 제물포구락부는 문을 연다. 제물포는 물론, 서울에 사는 14개국의 외국인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외국인들 사교클럽으로 운영되던 '제물포클럽'은 조계제도가 폐지되면서 기능을 상실한다.  

1913년 이후 제물포구락부는 일본재향군인연합회가 정방각(精芳閣)이란 이름으로 사용한다. 1934년부터는 일본부인회, 광복 직후엔 미군장교 클럽, 1947년부터는 대한분인회 인천지회가 각각 사무실로 쓰다가 6·25전쟁 중엔 북한군 대대본부가 되기도 한다. 1952년 7월 이후엔 시의회, 교육청, 박물관이 함께 사용했으나 1953년 의회와 교육청이 이전한 뒤 인천시립박물관이 들어섰다. 1990년 박물관이 지금의 연수구 동춘동으로 이전하며 중구문화원과 인천시문화원연합회로 바뀌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117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건물 내부는 여러차례 바뀌었으나 외관은 그대로다. 자유공원으로 통하는 건물 왼쪽 출입구는 새롭게 낸 것이다. 건립 초기와 1950년대 촬영한 사진에선 주출입구는 건물 정면에, 부 출입구는 건물 오른쪽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전시중인 독일서적 몇 권을 들춰본 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가을비는 여전히 나뭇잎 위로, 지붕 위로 떨어지며 늦가을의 교향곡으로 울려퍼지는 중이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