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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행복을 연구하는 카페

by 김진국기자 2016. 11. 15.

감나무 가지 사이로 코발트 블루의 겨울 하늘이 모자이크로 무늬졌다. 겨울바람이 스치울 때마다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내린다. 샘물같은 바람의 감촉과 겨울 새들의 지저귐. 인천시 중구 신포로 35번 54 '동국빌리지' 앞길로 겨울이 찾아들었다. 키가 큰 감나무들과 일렬로 주차한 승용차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국빌리지 뒷 편으로 '제일교회' 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다.

동국빌리지가 들어선 자리엔 '우리탕'(吳禮堂)이란 이름을 가진 대저택이 있었다. 우리탕은 개항기 인천해관의 역관이었다. 청국(중국)외교관 출신의 우리탕은 1909년 이 자리에 으리으리한 주택을 세운다. 스페인여자인 부인의 간청 때문이었다. 까만 오석을 다듬은 슬레이트 지붕과 대추색 벽돌로 외벽을 쌓아올린 건물이었다. 티크나무로 짠 유리창은 이 지하1층·지상2층 짜리 호화주택을 더 돋보이게 했다. 창문을 통해선 인천항 전경을 볼 수 있는 '오션뷰' 건물이었다. 당시 이 건물은 '존스톤별장'에 버금가는 서양식 주택이었다.

우리탕은 집을 짓고 난 뒤 얼마 안 돼 사망한다. 이후 유족들간 재산다툼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소유로 넘어간다. 우리탕주택은 1930년 요시다히데지로(吉田秀次郞) 주택으로 사용되다 광복 이후 미군 독신장교숙소로 쓰였다. 이후 '육군방첩대'가 쓰던 중 불에 타 소실된 뒤 '송학사'가 신청사를 짓고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의 동국빌리지가 들어선 때는 1990년대다.

신태범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어려서부터 이집을 오리당으로 부르며 딴 세상처럼 여겨왔다"며 "먼 발치에서 바라볼 뿐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동국빌리지 옆엔 올해 '행복연구소'란 카페가 생겼다.

행복연구소는 무슨 연구소처럼 보이지만 주인 신동완·이윤진씨 부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복연구소라 이름지었다"고 말한다.

작은 숲속처럼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가정식카페'가 드러난다. 행복연구소는 커피를 만드는 주방과 거실, 3개의 사랑방으로 꾸며졌다. 방 한켠, 책꽂이엔 따뜻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카페에선 독서토론회, 중국어 무료회화 강좌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소규모 야외결혼식과 음악공연도 가능하다고. 

신동완씨 부부는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행복연구소를 생각해냈다. '행복법정'은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겪는 부부간 갈등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직 변호사, 교수 등이 재판장으로 나와 문제를 해결해준다.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구수한 커피와 단풍 같은 형형색색의 차, 생과일주스에서부터 무알코올 칵테일 '모히또'까지 맛 볼 수 있다.

행복연구소 건너편은 중구청 별관이다. 중구청 별관은 출입문이 따로 없어 구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열린행정을 지향하겠다는 중구청의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탕저택 앞 이정표는 제물포구락부, 인천시역사자료관, 자유공원, 내리교회, 내동교회, 신포문화의거리 방향을 안내해주고 있다. 우리탕 저택이 있을 때만 해도 엠버시(embassy·대사관)란 푯말이 있었다.  

동국빌리지 앞에 늘어선 감나무 가지마다 무수한 '까치밥'들이 매달려 있다. 겨울햇살을 머금은 감들이 주홍빛으로 반짝인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