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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존스톤별장과 다비웨딩홀

by 김진국기자 2016. 11. 30.


 

 

          사진 위에서부터 현재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맨 위), 기념탑 자리에 본래 있었던 존스톤별장(중),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인 다비웨딩홀.

 

은 눈이 내린다는 절기인 '소설'(小雪). 자유공원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바짝 말라 부서진 나뭇잎들이 겨울바람을 타고 아무렇게나 날아다닌다. 작은 회오리로 맴돌기도 한다. 겨울이 깃든 자유공원은 고요하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쓸쓸한 벤치 위로 커다란 커피포트와 종이컵을 쌓아놓은 할머니가 앉아 있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꽃이라 했던가. 그 옆으로 할아버지들이 다가온다.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원들이 구보를 하며 지나간다. "끼익~ 끼익~" 겨울의 새소리는 여름의 그것과는 다르게 들린다. "깡! 깡!" 어디선가 공사장의 쇠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자유공원 비둘기광장엔 비둘기가 보이지 않는다. 광장에서 응봉산 정상 방향으로 향하자 끝이 뾰족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은 8개의 탑신으로 이뤄진 조형물이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탑으로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한다. 66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엔 '존스톤별장'이란 건축물이 서 있었다.

영국인 존스톤(James Johnston)은 1905년 응봉산 정상에 여름을 즐길 별장을 짓는다. 그는 상하이(上海)에서 무역과 항만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사업가였다. 응봉산 정상에 오롯이 서 있는 존스톤별장은 바다쪽에서 바라보면 중세시대 작은 성처럼 보였다. 다각형의 지붕과 붉은 기와, 굴곡으로 처리한 벽면은 매우 이국적이었다. 1층 대·중·소 식당과 2층 6개의 객실은 눈이 파란 영국인과 지인들의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었다.  
1919년까진 존스톤이 소유하던 이 건물은 그가 죽은 뒤 주인이 여러차례 바뀐다. 그러던 것을 인천부가 1936년 매입해 '서공원회관'이라 이름 붙였다가 '인천각'으로 개명하며 요정으로 바뀐다. 광복 이후 미군장교 숙소로 사용되던 존스톤 별장은 1950년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사격으로 불 타 없어진다. 이 자리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진 때는 한참 뒤였다.

 

존스톤, 1905년 응봉산 정상에 여름별장 지어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사격으로 불 타 없어져 
그 곳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세워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엔 '다비웨딩홀' 들어서 



100주년 기념탑은 예술적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호응은 얻지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문화계 인사는 "예술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끝이 뾰족해 날카롭게 느껴지고 왠지 불편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탑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에서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내려가면 '다비웨딩홀'이 나온다. 연오정 뒤의 이 건물에선 결혼식은 물론 돌잔치, 칠순, 생일파티 등 가족파티가 열린다. 식당과 카페가 점심시간에도 사람들이 발걸음을 한다. 중구 북성동 3가 8-3 이 자리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소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서구와 맺은 최초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으로 이후 서국 각국과의 조약에 준거가 된 중요한 사건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는 처음 화도진공원과 파라다이스호텔, 자유공원 어딘가의 제3의 장소로 논란이 분분했었다. 그러나 김성수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감사담당관이 개항 당시 자료를 발견하면서 지금의 다비웨딩홀 자리가 정확한 장소란 사실이 밝혀졌다. 인천시사편찬위원회도 지난해 말 토론회를 열어 다비웨딩홀 자리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임을 비정했다.

이 자리는 인천 유일의 방송국이었던 HLKX이 1958년 12월23일 개국, 한국복음주의방송국으로 출범했던 곳이기도 하다. 1967년엔 극동방송국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나중에 서울로 이전한다. 이후 라파치아웨딩홀, 탱고스튜디오 등 상업시설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다비웨딩홀로 상호를 변경해 성업 중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가 명확히 밝혀졌지만 '화도진축제'를 여는 동구는 여전히 화도진공원이 체결장소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재현식까지 개최하는 상황이어서 심각한 역사왜곡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지자체간 축제경쟁에서 비롯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다비웨딩홀을 뒤로 하고 가파른 언덕을 내려간다. 얼마 안 있어 응봉산에 흰 눈이 내릴 것만 같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