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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영국영사관과 파라다이스호텔인천

by 김진국기자 2016. 12. 7.

 

 


명한 겨울. 간밤에 불어온 북서풍이 인천의 겨울하늘을 말끔히 씻어냈다. 월미도 앞은 거대한 기중기 몇 개가 골리앗처럼 서 있다. '가가호호 화재예방 하하호호 행복쉼터'. 에메랄드 홀 입구 위에 걸린 플래카드가 웃는 것처럼 펄럭거린다.  

금빛테두리를 한 회전문을 열고 들어간다. '신포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발표회 2층 다이아몬드홀'. '한국GM승진자 교육세미나 8층 토파즈홀'. 호텔로비 안내판이 오늘의 행사를 알려준다. 호텔엔 벌써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사슴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별처럼 반짝인다.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57(항동1가). '파라다이스호텔인천'은 연말 고객을 맞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특1급호텔'답게 시설을 정비하고 외벽까지 산뜻하게 단장을 했다. 깨끗하고 아늑한 객실, 따듯한 행사장. 50년 전통의 깊이와 모던한 분위기의 공존은 이 호텔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우라'다.  

파라다이스호텔인천은 지난해 11월 "문을 닫겠다"고 밝혀 인천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호텔측은 12월까지만 운영하고 리모델링 해 2017년 개장하는 '영종 파라다이스 시티' 직원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50년 간 이 호텔과 함께 살아온 인천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중구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데다 중구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중구민들은 물론이고 단체장인 김홍섭 중구청장까지 나서 "지역정서를 무시한 채 눈 앞의 작은 이익만을 보는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문을 닫는 것은 문제"라며 "오히려 주변부지 매입 등을 통한 투자를 확대해 지역 주민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정상 운영을 촉구했다. 호텔측은 결국 정상운영으로 선회, 지금까지 정상운영을 해오고 있다.  

폐장 선언 뒤 20년 가깝게 열렸던 '새얼아침대화' 개최장소가 송도국제도시 쉐라톤호텔로 옮겨지기도 했다. 
인천시민들이 폐장을 결사반대한 이유는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이 호텔은 1963년 객실 43실의 '올림포스 호텔'로 개장한 인천 최초의 관광호텔이다. 인천 최초의 엘리베이터 설치 건물인 이 호텔은 인천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인천시민들과 동고동락을 해 왔다. 인천의 주요행사가 이 곳에서 열렸고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집안 행사도 치러졌다.

 

1963년 '올림포스 호텔'로 개장 
지역 최초로 엘리베이터 설치 
1884~1915년 영국영사관 자리 

 


1967년엔 국내 최초로 들어선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서울 워커힐호텔보다 1년 빠른 것이었다.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자인 전락원(2004년 사망) 전 회장은 당시 카지노로 큰 돈을 벌어들인 '카지노 업계' 대부로 불렸다. 전 전 회장은 2000년 아예 호텔을 인수해 지금의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렇지만 카지노가 2005년 8월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인근 그랜드 하얏트 인천으로 자리를 옮기며 영업실적이 점점 떨어지자 문을 닫겠다고 했던 것.

호텔 관계자는 "다소의 영업적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역사회와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호텔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이용과 홍보 등 지역사회의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인천앞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엔 1884년 '영국영사관'이 있었다. 영국영사관은 처음 작은 목조건물이었으나 1897년 단층 벽돌조 건물로 다시 세운다. 새 건물은 앞부분을 아케이드(arcade)로 장식한 영국식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었다. 영사실, 침실, 객실, 식당, 창고 와 중정 등이 있었다고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말한다.  

영국영사관의 영사업무는 1915년 끝난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며 인천부청으로 이관된 이후 광복 전까지의 기록은 아직 발견하지 못 했다.  

영국영사관 건물은 1946년 8월 14일 시립예술관으로 문을 열었으나 곧 휴관했으며,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때 소실된다. 

한 때 이 곳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로 알려지기도 했다. 에메랄드홀 앞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라 새긴 돌비석이 서 있다.  

같은 하늘 아래서 반세기를 살아온 인천의 특급호텔은 이제 중장년이 됐다. 인구 300만의 인천엔 지금도 수십층짜리 호텔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인천사람들 기억 속의 '올림포스호텔'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인천의 아침햇살과 붉은노을을 온 몸으로 받으며….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