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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방송 분야서 인천 널리 알리고파" 김구라(본명 김현동, 47세)가 녹화 중인 CJ E&M스튜디오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를 시샘하는 걸까. 바람이 불 때마다 연분홍빛 벚꽃 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나풀나풀 땅에 떨어진 꽃잎들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약속시간이 5분쯤 지났을 때, 김구라 매니저가 스튜디오 안에서 걸어나왔다. “녹화가 덜 끝난 것 같아요. 녹화라는 게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거든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얼굴에 와 닿는 훈훈한 바람과 봄의 전령사 벚꽃잎들의 군무. 봄비 때문에 하늘이 흐렸지만, 봄은 또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녹화 끝났습니다. 들어오세요!” 스튜디오 마당 벤치에 앉아 게으른 봄을 즐기고 있는 기자를 향해 매니저가 소리쳤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일어섰다. 흩어졌던 상념들도 하나둘 .. 2016. 9. 18.
백령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들은 1951년 1월, 서해 최북단 백령섬.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백령도 사람들의 십 수배인 2만 명의 사람들은 인민군을 피해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다. "내 금세 돌아오마" "며칠만 참고 있어라". 고향을 떠나올 때 부모, 처자식에게 던진 그 말이 반세기 넘는 마지막 작별의 인사가 될 줄이야….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1953년 남북을 가로막는 두꺼운 장벽이 쳐졌다. 육지는 3·8선으로, 바다는 북방한계선(NLL)으로 나뉘어지며 사람들도 남쪽사람, 북쪽사람으로 갈라졌다. 고향에 돌아가길 포기한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인천이나 태안 같은 육지로 빠져나갔다. 오매불망, 고향을 잊지 못 하는 사람들은 백령섬에 남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2016. 9. 17.
가마우지가 전해준 백령도 이야기 백령도에 비가 내렸다. 첫사랑 같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빗줄기였다. 남북의 긴장이 팽팽한 지금,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괜찮을까. 지난 13일~14일 찾은 백령섬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지만 이따금 총소리가 들렸고 학교에선 대피훈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주민은 "연평도 포격 이후 백령도 주민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밤새 포격소리가 들리면 전쟁을 치르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북의 사이가 굳어질 때마다 백령도 사람들의 표정도 굳어져가고 있었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란 말처럼 백령도의 풍광은 여전히 눈부셨다. 백령도엔 그렇게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침 7시50분 '하모니플라워'호를 타고 연안부두를 떠나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8분. 3시간 30분 .. 2016. 9. 17.
송창식 "노래는 나의 꿈 나의 고향" 어린 시절의 추억 긴담모퉁이 ‘긴담모퉁이’를 돌아가면 엄마가 있을 것만 같았다. 긴담모퉁이 담벼락에 피어난 개나리처럼, 화사한 웃음으로 “창식아” 하고 부르며 달려와 와락 끌어 안아줄 것만 같았다. 모퉁이를 따라 몇 십 바퀴를 돌았던가. 벚꽃처럼 부서져 흩날리던 봄 햇살은 사라지고 하늘이 시나브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사내아이는 때에 절어 딱딱해진 옷소매로 쓰윽 눈물을 훔쳤다. 우두커니 서서 초저녁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가 털썩, 모퉁이 한쪽에 주저앉았다. 아이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삼촌이 군에 입대하며 선물한 것이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이가 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 2016.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