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1.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부반장, 나와 봐. 오늘은 부반장이 교탁위에서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하겠습니다. 박수! 부반장이 이 정도는 해야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한 말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유독 야박했다. 반 친구들 앞에서 교탁 위에 세워놓고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시키질 않나, 교실 미화 활동에 한번 빠졌다고 대놓고 혼을 내 울리기도 했다. 적막함이 감도는 교무실 한가운데 서서 애써 울음을 참는데 "뭘 잘 했다고 울어? 그게 예의야?"라고 다그치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Hey, Matilda monkey! How are you today? Did you show my picture to your mom yesterday?”
이건 초등학교 때 원어민 선생님이 한 말이다. 선생님이 좋아서 영어 영재반에 들어갔고, 선생님과 늘 즐겁게 대화했다. 그림 그리는게 공통 취미였던 우리는 필담을 나누듯 그림담(?)을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그린 원숭이 그림을 인상깊게 본 선생님은 그날 이후 영어이름 Matilda에 Monkey를 붙여 날 'Matilda monkey'라고 불렀다.
△원어민 선생님이 그린 'Matilda Monkey'그림. 이것 말고도 분명 몇 장 더 있을텐데!
"Did you show my picture to your mom yesterday? (어제 내 그림 엄마 보여드렸니?)"라는 질문에 내가 당당히 "Not yet! (아직요!)"라고 대답하자 '얘가 이런 표현은 어디서 배웠지'하는 표정으로 귀엽다는 듯 쳐다보던 게 생생하다.
나를 예뻐해 준 선생님, 미워한 선생님,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선생님... 내가 만난 모든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든지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2. 선생님으로 기억될 나
그런데 이젠 내가 누군가의 ‘선생님’이 됐다. 초등학교, 고등학교에서의 멘토링 활동 때문이다.
처음 선생님 입장으로 교탁에 서던 날, 책상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하며 느낀 건 설렘도, 떨림도 아닌 착잡함이었다. 내 기억 속에 여러 선생님이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듯 나도 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을 알아서였다.
단순히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 줘야 할까 고민은 갈수록 깊어졌다.
'잘못을 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 바로잡는 게 좋을까, 좀 더 참아주는 게 좋을까?
'언제까지나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대해줘야 할까? 선생님 답게 각을 좀 세워야 하나?'
'지금 이 얘기를 하면 잔소리로만 여기고 흘려듣지 않을까. 그럼 충고는 언제 해주지?'
멘토로 활동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고민은 진행형이다. 정식 교사도 아닌 대학생 멘토 주제에 생각이 많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 애들이 나를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러서 그런 걸까./이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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