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없으면 존립 기반이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논어(論語)』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백성들의 신뢰가 없다면 국가는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뜻의 고사(故事)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두고 딱 이와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신뢰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다. 국가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 리더에 대한 조직원들의 신뢰는 마지막까지 그 조직이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까지 추락했다. 지지율 5%의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통치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날개 없는 추락은 비단 대통령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사과 이후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진정성 없는 담화문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국가적 비상사태에 준하는 현 시국에서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일명 ‘90초 사과문’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사과문보다는 나아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렇다 할 대책은 들어가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여·야에서 거국중립내각에 관한 논의가 오가는 상황에서 또다시 소통 없는 개각을 단행한 박대통령의 행보를 지켜본 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5일 열린 민중총궐기의 규모는 이를 실감케 했다. 약 20만 명의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진행했다. 2008년 6월 광우병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여론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박대통령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새 국무총리로 지목한 ‘김병준 카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여야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상황인식수준’을 놓고 여·야와 국민들의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불거졌던 ‘불통’문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쳐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현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소통 부재의 대통령에 신뢰를 완전히 져버렸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추락도 예외는 아니다. 최순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검찰의 사진이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검찰이 들고 있는 압수수색 박스 내부가 비어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SNS에서는 검찰이 들고 나오는 압수품 상자들이 너무 가볍고 빈 상자처럼 보인다며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누리꾼들은 ‘검찰은 수사 할 의지가 없다’며 검찰의 ‘흉내내기’ 수사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가짜 최순실’ 논란 또한 검찰에 대한 불신을 반증하고 있다. 지난 1일 최순실이 긴급체포 된 후 서울 구치소로 가는 호송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최 씨의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두했을 때의 모습과 다르다며 ‘대역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지문 대조 통해 본인 확인됐다’며 논란을 일축했지만, 이러한 논란이 불거졌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검찰수사를 믿지 못하는 국민적 여론의 중심에서, 앞으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어떠한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될지 국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나라를 뒤덮어 대한민국을 뿌리 채 뒤흔들고 있다. 사실상 지도자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안개 낀 망망대해에 놓인 한 척의 배 같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민심을 파악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불통은 용납할 수 없다. 범국민적 여론을 받아들이고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이어 믿을만한,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신뢰도 있는 참모진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숙제는 여·야당과 언론에 있다. 언론과 여·야당은 각자의 정치적 역할과 신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 봐야 할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현 시국을 일종의 정치적 기회로 생각하여 정치적 손익을 따지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국민에게 남은 일말의 믿음마저 져버리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적 차원의 대형 사건과 관련해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그 중심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막중하다. 특종과 가십 위주의 보도를 우선으로 하기 보다는 진실보도를 추구하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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