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외벽은 황해에서 불어온 바람의 더께가 아닐까. 바람과 비, 햇살을 온몸으로 맞아온 100여년의 시간. 그 세월 동안 사각형의 '의양풍'(擬洋風) 건물은 누렇기도 하고 베이지색 같기도 한 불균질한 색으로 빛 바래 있었다. 그 빛깔이 오랜 세월의 평지풍파를 다 겪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건물 외벽에 착색한 얼룩마저 아름다운 무늬처럼 비친 것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기 때문이리라.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인천아트플랫폼 관리사무동'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서양식 건물에 일본 특유의 건축양식을 덧씌운 이 건물의 앞모습은 좌우대칭형이다.
출입구 윗부분엔 삼각형 장식물인 '페디먼트'가 얹혀져 있고 출입구 양쪽에 서 있는 2개의 기둥이 견고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풍긴다. 앞에서 보면 슬라브건물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붕 가운데가 솟은 모양의 '모임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은행이나 관공서와 같은 건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구 근대건축물 사이에서 이 건물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회사업무용 건물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구 지역에 지은 사무소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구한 말 이 건물은 日本郵船株式會社 仁川支店(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쌀과 잡화를 실어나르는 기선(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배)을 운행하던 회사다. '삼능기선'과 '공동운수'의 합병회사인 일본우선주식회사는 조선 해운업계에 눈독을 들이다 1894년 2월 조선의 해운회사인 '이운사' 위탁관리를 시작했고, 이후 인천의 항운업을 독점하며 성장한다.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시작해 미쓰비시(三菱)기선 인천지점, 굴기선회사 등 건물주인이 몇 차례 바뀌긴 했지만 건물의 주인들은 대부분 해운업 종사자들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대한통운창고, 대진상사,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와 같이 항만회사 건물로 사용됐다. 지금은 6차선의 도로와 인천중부경찰서가 들어섰지만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은 매립전까지 갯벌과 맞닿아 있었다.
현재의 '인천아트플랫폼 관리동'으로 변모한 때는 지난 2009년이다. 지난 2000년 인천시는 중구 해안동의 개항기 근대건축물과 창고 등을 매입한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이란 공간이 탄생한다. 여러 개의 창고동으로 이뤄진 인천아트플랫폼엔 전시장과 공연장, 교육관, 아카이브 커뮤니티 등이 들어서 있다.
인천문화재단이 관리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신진 예술가들에게 기회의 공간이다. 재단은 열정 넘치는 젊은 예술가들을 선발해 창작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선 예술인들의 전시와 공연이 끊이지 않으며, 때때로 문화현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도 펼쳐진다. 주말이면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마치 타악기의 두드림처럼 거리 가득 울려퍼진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훼손하지 않고 리모델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건축물 모양을 그대로 둔 채 기능을 위한 내부 리모델링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원도심이자 중구의 구도심 지역이 한결 아름다워졌다. 여기에 '찾아오는 동네, 즐겁게 놀 수 있는 동네'를 가꾸려는 중구청의 열정과 노력이 비타민처럼 인천아트플랫폼을 건강하게 지켜주고 있다.
장마철,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지고 난 다음날인 7월 중순 찾은 100년 전 일본우선주식회사는 고즈넉한 미소를 띄워 보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오롯이 받아내며 황해를 향해, 크고 작은 배들을 향해….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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