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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카후에 킴빠와 청실홍실

by 김진국기자 2016. 9. 15.

"몇 분 이세요?"  
"이렇게 둘이예요."  
"들어오세요~." 

36도를 오르내리는 8월 초순의 여름 한낮. 인천 중구 신생동 '청실홍실' 식당 앞에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뙤약볕을 뒤집어 쓴 남녀노소의 등이 땀에 젖어 군데 군데 짙은 색깔로 변해 있다. 37년 전통의 '메밀국수'를 맛 보려는 사람들은 기대 반, 지루함 반의 어정쩡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식당 앞에선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지만, 시원하기보다는 온천수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20여 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들어가 5000원 짜리 메밀국수를 주문한다. 동그랗게 말아 채반에 얹은 메밀면 2덩이와 장국이 2, 3분도 안 돼 나온다.  

장국은 멸치와 다시마, 바지락으로 우려낸 것이다. 무즙과 파, 겨자를 적당히 넣어 휘휘 저은 뒤 메밀국수 한 덩이를 넣어 국물에 만다. 한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질기지도 연하지도 않은 면발과 시원달콤한 국물. 입안에 감도는 식감과 목으로 넘어가는 질감이 예사롭지 않다. '문전성시'인 1층 청실홍실 간판 위로 '2, 3층 급임대한다'는 부동산중개소의 안내문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1920년대 이 자리엔 '카후에 킴빠(金波)'란 이름의 건물이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한, 당시로선 보기 힘든 3층짜리 서양식 건축물이었다. 벽돌조로 추정되는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의 필지를 따라 지어졌다.  

1m 정도의 석조기단 위에 벽돌로 1층을 쌓고 1층과 2층 사이엔 석조를 둘렀다고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설명한다. 2, 3층은 1층과 다른 재료를 써서 1층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붕은 패러핏(parapet·옥상이나 교대위 등의 단부에 설치한 연속적인 낮은 벽)을 두른 평지붕이었다. 녹색외벽에 2층의 큰 창문 2개, 3층의 작은 창문 1개가 나 있는 현재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카후에'는 '카페'(Cafe), '킴빠'는 '금파'의 일본어 발음이다. '카후에 킴빠'는 말하자면 '금파카페', '금빛물결이 출렁이는 카페'였던 셈이다. 지금과 비슷하게 당시 카후에 메뉴는 맥주와 양주, 커피, 간단한 서양요리 등이었다. 주 고객은 옷깃을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에 중절모를 쓴 '모던 남성'과 종아리가 드러나는 원피스에 울긋불긋한 양산을 '신식여성'이었다.

서양식 옷차림으로 한껏 치장을 하고 싸구려 향수와 분 냄새를 풀풀 풍기며 카후에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드레스를 입은 여급을 도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음…, 여기서 제일 비싼 게 어떤 거지요?" "최고급 고희('커피'의 일본말) 한 잔 주시지요."

한 때 이 곳 주인이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국외로 망명한 러시아 '백계'(白系) 여성이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파란 러시아 마담을 보기 위해 많은 남자들이 카후에를 들락거렸다.  

백계의 후예들이 한 때 신포동의 외국인선원 전용술집인 '씨멘스클럽'에 모였던 때도 있었다. 1990년대 동유럽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가 붕괴한 이후 우크라이나, 하바로프스크 등지의 러시아 여성들이 너도나도 인천에 찾아들었다. 돈도 먹을 것도 없는 고향을 떠나 '코리안드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여성들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인천에 머물면서 외국인선원들을 대상으로 술시중을 하며 돈을 벌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광복 전 카후에가 젊은이들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시대상황에 비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인천 한 세기>의 저자 신태범 박사는 "대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돈 내고 맥주를 마신 곳이 금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광복 이후 카후에 금파는 '고려회관'이란 이름의 상업시설로 운영되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진다.  

이후 비슷한 모양의 현 건물이 세워졌고, 1979년부터 청실홍실이란 메밀국수집이 1층에 문을 열었다. 청실홍실의 주 메뉴 가운데 하나가 우동이다. 청실홍실의 우동도 별미지만 1970년대 청실홍실 건너편에 있던 '오부자집' 우동은 "정말 끝내줬다"고 먹어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20세기 초 서양식 카페는 21세기 들어 만두·메밀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100년 전 누군가 맥주와 양주를 마시던 자리에 앉아 메밀국수와 만두를 먹는다. 다시 한 세기 뒤, 이 자리에선 어떤 사람이 무슨 음식을 먹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