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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

신의 입김에 휩싸인 하늘의 관문 … 몽환적 수도원

by 김진국기자 2014. 9. 25.

그리스인들의 수도원은 하늘과 지상의 경계점에 위치해 있었다.

인천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처럼, 메테오라는 땅이 끝나고 하늘이 시작되는 그 곳에서 하늘에 말씀을 올리고,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인 '공중에 뜬 수도원'은 그렇게, 꿈 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한 몽환적인 모습으로 인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 회원들을 맞아주었다.

빗방물이 호텔 창문을 두드렸다. 지난 3월28일 오전 7시20분(그리스 현지시각). 핀투스산맥을 타고 흐르는 칼람바크 마을에 비가 내렸다. 인천박물관협의회의 터기·그리스 여정의 끝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이.

메테오라수도원은 하늘의 기둥이라고 부르는 핀투스산맥 바위절벽 꼭대기에 14세기 중엽부터 세워졌다. 처음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6개만 남아 있다.

'공중에 뜬' 수도원인 '메테오라'로 오르는 길은 위태로워 보였다. 산세가 험한 데다 심하게 굴곡져 있었고 아래를 보면 아찔한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왔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천길낭떠러지 길이었다. 신이 내뿜은 입김처럼, 핀투스산맥의 중턱은 안개마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을 휘감은 구름안개는 메테오라를 더 신성하고 신비로운 장소로 보이게 했다. 탄성과 긴장 속에 메테오라엔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20분쯤. 버스는 메테오라 수도원 맞은 편의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손으로 만든 인형 등 구릿빛 얼굴의 상인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념품을 사라는 미소를 보내왔다.

가장 큰 규모의 '메갈로메테오라'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이 일행앞에 펼쳐졌다.

"계단을 한참 올라야하고 매우 미끄럽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은 여기에 머물고 계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여기서도 충분히 경관을 볼 수 있으니까요."

수도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가이드가 주의를 줬다.

이귀례 회장이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폭 1m정도로 보이는 좁은 계단을 타고 2,30여 분을 올랐을까. 수도원 입구에 도착한 일행들이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간혹, 구름이 걷히고 새파한 하늘이 힐끔 힐끔 얼굴을 보여줬지만 주변은 여전히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채 물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곳에 어떻게 교회를 지었을까.' 거대한 돌덩이 위에 하나의 건축물을 그대로 얹어놓은 것 같은 메테오라는 볼수록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종교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런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메갈로메테오라 안에 있는 교회. 교회는 안팎으로 프레스코성화로 가득하다.

일행이 찾은 메갈로메테오라는 6개의 수도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비잔틴시대의 성화와, 고문서, 목조 장식품들이 일행을 맞아줬다. 그리스정교의 '이콘성화'는 한결같이 왼쪽엔 마리아, 가운데는 재림예수, 오른쪽은 요한이 그려져 있다. 성화를 비롯해 내부는 사방이 프레스코화로 치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굴뚝 연기에 그을린 부엌과 식당, 생활도구들을 모아 놓은 창고에서부터 역대 수도사들의 초상화와 수도사들의 유골까지 모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유골들이 분홍빛을 띠는 것은 레드와인으로 씻었기 때문이라고 가이드가 말해줬다.

수도사들은 이 곳에서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아침식사로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었으며, 이따금 와인을 마셨다. 세상과 단절한 채 수도사들은 오직 하나님과만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은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해주기도 했다.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들은 두루마기 모양의 검은 '라소'를 입고 머리엔 검고 긴 원통형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와 수염은 자르지 않기 때문에 덥수룩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계단이 놓여졌지만 과거엔 그물망이나 절벽에 설치한 줄사다리로 입출입을 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도 남아 있었다. 절벽아래서 위로 올라가야 하므로 반드시 도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꼭대기에서 길게 내려뜨린 그물망의 줄을 내려주면 그걸 타고 위에서 끌어올려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그물망과 줄사다리는 관광객들의 볼거리로만 남았다. 관광객들은 가파른 바위벽을 깎아 만든 돌계단을 올라 출입이 가능하다. 이 계단은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며 만든 것이다.

메테오라는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중세의 수도원이다. 핀투스산맥의 완만한 지형이 끝나는 지점, 불쑥 솟아오른 바위산 위에 지어져 세계10대 불가사의로 꼽히기도 한다. 테살리아 평야 서북단에 위치한 메테오라지역은 세계에서 그 유형을 찾아보기 힘든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곳에 수도사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10세기 쯤 부터.

동굴이나 바위를 파서 기도하고 성체를 모신 그리스정교도 수도사들은 14세기 중엽부터 메테오라에 본격적으로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했다. 메테오라의 기원은 아토스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투르크 해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아토스 수도원은 적들이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장소를 찾았고, 마침내 핀투스산맥의 기암괴석을 발견한다. 16세기까지 24개의 수도원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메갈로메테오라를 포함해 6개만 남아 있다. 메갈로메테오라 수도원, 발람수도원, 암벽에 붙은 것처럼 보이는 로사노수도원,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 가장 오르기 힘들다는 트리니티 수도원, 성 스테파노 수녀원이 그것이다. 이중 트리니티 수도원은 007시리즈 '포 유어 아이스 온리'의 배경이 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300계단을 완주한 이귀례 회장은 "메테오라는 안 왔으면 평생 후회했을 만큼 대단한 곳"이라며 탐방소감을 대신했다. 빗방울일까, 땀방울일까. 7박10일의 일정을 마친 인천박물관협의회 탐방단의 얼굴에 물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