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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

달 표면 같은 기암괴석·우주같은 지하세계

by 김진국기자 2014. 9. 25.

카파도키아의 대표적 유적지인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4세기부터 수도사들이 돌산을 뚫어 만든 교회들로 가득하다. 지난 3월25일 오후 괴레메를 찾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지어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우측 상단은 괴레메 전경.

어디선가 어린왕자가 나타나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카파도키아는(사막은) 아름다워. 카파도키아가(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지하도시가(우물이) 있기 때문이지."

카파도키아는 지구의 땅이 아닌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혹성처럼 보였다. 땅 위는 기암괴석, 땅 아래는 개미집 같은 지하도시가 건설돼 있었다.

이 기괴한 도시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카파도키아' 땅을 처음 목격했을 때 불현듯 생각했다. 지구가 아닌 것 같아. 구불구불 패인 계곡과 끝도 없이 뻗어 있는 기암괴석들. 황량한 벌판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신비로웠다. 카파도키아가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연쇄적 화산폭발 때문이다. 900만년 전부터 300만년까지 일어나 화산폭발로 대지에 화산재와 용암이 쌓였다. 빗물이 그 위를 타고 흐르며 부드러운 화산재를 씻어내고 단단한 용암은 비껴 지나갔다. 카파도키아 땅은 그렇게 빗물이 빚어낸 작품이다.

카파도키아의 대표적 유적지인 '괴레메' 야외박물관을 찾은 때는 현지시각 지난 3월25일 낮 12시. 돌산 중간중간 뚫린 네모난 동굴들. 신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거대한 짐승의 목구멍처럼도 보였다. 동굴사원을 뚫은 사람들은 수도사들이다. 그들은 굴을 뚫어 사원을 만들고 그 안에 기거하며 기도를 올렸다. 이 중엔 카파도키아의 위대한 스승 성 대 바실리오스, 니사의 그리고리오스,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가 세운 수도원도 있다.

수녀들이 살던 방과 교회와 식당을 둘러본 뒤 우측으로 가자 '사과교회'가 나온다. 돔형식의 본당 한가운데 '가브리엘' 대천사가 사과를 들고 있는 성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는 사과가 아니고 지구라고 전해진다. 조금 더 오르자 '바르바라 성녀의 교회'가 나온다. 교회 안엔 성모 마리아와 성녀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입구 왼쪽벽에 벌거벗은 몸을 수염으로 가리고 있는 노인은 '성 오누프리오스'다. 노인은 본래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나 남자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하늘에 기도를 올렸고 추한 모습의 노인으로 바뀌었다. 여러 개의 교회를 거쳐 괴레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샌들교회'에 닿았다. 철계단을 걸어 올라가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는 십자가 모양이고 2개의 기둥이 있는 모습이다. 입구 반대쪽엔 예수의 승천장면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샌들교회는 그림 아래 패인 홈이 발자국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교회와 프레스코화로 가득한 괴레메는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든 걸작이었다.

1시간쯤 돌아본 일행이 '케밥식당'으로 향했다. 산 속에 동굴을 뚫어 만든 식당이었다. 몇몇 사람이 음식을 앞에 놓고 입맛을 쩍쩍 다시자 이귀례 회장이 얘기한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탐방입니다. 이 나라의 중요한 역사이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케밥 한 접시를 먹으면 우리는 터키의 수천년 역사를 우리 안에 담게 되는 겁니다." 식당을 나온 일행은 낙타모양을 비롯, 여러 형상의 바위가 있는 돌산을 거쳐 기기묘묘한 요정들의 계곡인 '파샤바아'를 끝으로 카파도키아 일정을 마쳤다.

앞서, 이날 아침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지하도시 '데린쿠유'였다. 지하 11층으로 85m의 깊이를 가진 도시다. 주거공간 뿐 아니라 교회, 성직자 학교, 포도주 제조장, 마굿간에 이르기까지 데린쿠유는 지상의 모든 시설을 갖춘 '별세계'였다.

괴레메 전경

지하도시가 처음 구축된 것은 기원전 7~8세기 '프리기아 왕국' 때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엔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곳에 숨어 살았다. 데린쿠유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때는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침입이 잦던 5세기~10세기다. '미어켓'처럼 사람들은 평소 지상에 살다가 적이 오면 지하로 숨어 들었다. 출입구엔 200㎏~500㎏이나 되는 우리나라 맷돌 같은 돌장치가 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올 때 이 돌문을 잠가 막았으며 간혹 돌에 치어 죽는 병사들도 있었다. 어쩌다 적이 지하도시로 잠입하면 터널을 통해 다른 지하도시로 달아나면 됐다. 식수는 지하우물로 해결하고 환기는 수직갱을 통해 이뤄졌다.

학자들은 데린쿠유와 같은 지하2층 이상의 지하도시가 200개는 될 것으로 예측한다. 도시들은 모두 연결됐으며, 최하 3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개된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는 전체 10퍼센트에 불과한 수치다.

괴레메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상념에 빠져들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숨 막히도록 컴컴하고 차가운 지하도시. 그들은 왜 두더쥐처럼 어두컴컴한 지하에 숨어 살아야 했을까.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는 여전히 종교와 민족, 이념 갈등으로 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중이다. 버스 차장 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파도키아의 푸른하늘은 말이 없다. 훅-훅-, 뭉게구름들만이 달리는 버스 뒤로 빠르게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