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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

오스만제국 영욕 안고 보스포러스해협을 흐르다

by 김진국기자 2014. 9. 25.

태양의 부서진 조각들이, 바다 위에서 물비늘로 반짝인다. 유럽과 아시아를 한아름에 품고 있는 '보스포러스해협'을 가르며 보트가 천천히 나아간다.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충돌하고 융합한 땅 '이스탄불'. 오래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땅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넘쳐난다. 과거 국제교역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면, 2014년 봄엔 인천시립박물관협회와 같은 역사문화탐방단이나,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사실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스탄불의 3월은 성지순례가 가장 많은 달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의 상징이자 터키의 대표적 모스크(이슬람사원)인 '블루모스크'에 닿은 것은 지난 3월22일(터키 현지시각) 오전이다. 정식 명칭은 모스크를 건설한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이지만 실내가 푸른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블루모스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광각으로 초점을 잡았음에도, 블루모스크의 외관 전체를 카메라렌즈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모스크의 미나레(첨탑)는 1개~4개인데 블루모스크는 6개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6개의 첨탑을 렌즈 안에 집어 넣으려고 각도를 달리 잡으면 야자수와 같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1453년 비잔틴제국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은 수도를 이스탄불로 정한다. 이후 470여년 간 이스탄불은 터키의 수도로 기능해 왔다. 블루모스크는 천도 한참 뒤인 1609년 8월 건설을 시작해 1617년 5월 완공한 사원이다.

이 시기는 사실 오스만제국이 쇠락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오스만제국은 1593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과 전쟁을 시작했으나 승리하지 못 하고 작은 왕국이던 오스트리아를 동등한 제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제국 초유의 일이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아흐메드1세(1603~1617 재위)는 실패에 따른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알라'에게 거대한 사원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모스크 건설을 담당한 사람은 궁전으로 팔려온 알바니아인 '센테프카르 메흐메드 아가'(1540~1617)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왕들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일까. 고려 역시 몽골이 침략했을 때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세계 최대 목판인쇄물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했었다. 팔만대장경은 이후 150년 간 강화도에 보관되며 고려라는 나라를 지켜주었다. 아흐메드1세 역시 하늘의 문에 닿을 만큼이나 높은 미나레를 6개나 가진 모스크를 건설하며 알라신을 향해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기원했으리라.

인천박물관협의회 회원들은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뒷쪽 문을 이용해야 했다. 남자들은 신발만 벗고, 여자들은 머리에 스카프와 같은 것을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붉고 푸른 양탄자와 푸른빛깔을 발산하는 거대한 천정. 출입문을 지나자 겉에서 보던 것보다 몇 배는 크게 느껴지는 실내에 회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 하나만 봐도 수십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을 것처럼 거대했다. 벽의 아랫 부분에 새겨진 '쿠란'을 향해 검은 차도르를 쓰고 절을 하는 무슬림들과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관광객들로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블루모스크가 이처럼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맞은 편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피아성당은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터키인들은 여전히 '그리스인들의 교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소피아성당은 537년 비잔티움 제국이 '성스런 지혜'란 뜻으로 지은 그리스건축의 대작이었던 것이다. 이후 961년 동안 그리스교회로 사용되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리스(이스탄불)를 점령하며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된다.

술탄 아흐메드의 야망에도 불구하고, 블루모스크는 결과적으로 규모나 건축미에서 1000년 앞서 지어진 소피아성당을 따라잡속 못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육안으로 보면 블루모스크가 소피아성당보다 웅대해 보이지만 이는 지대가 높기 때문일 뿐, 실은 그렇지 않다. 블루모스크 중앙 돔의 지름과 높이는 각각 23.5m, 43m이다. 이에 비해 소피아성당의 그것은 지름이 33m이며 높이는 56m에 이른다. 건물의 크기 역시 블루모스크가 길이 51m, 너비 53m인 반면 소피아성당은 길이가 77m, 너비는 71.7m에 달한다.

그렇지만 내부 장식에 있어서는 블루모스크가 더 화려한 것처럼 보인다. 블루모스크는 26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아라베스크 문양에 푸른 빛깔이 감도는 2만1000여개의 이즈닉타일로 장식돼 있다. 블루모스크의 완공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유럽의 신흥 강국들은 황혼의 제국인 오스만을 향해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블루모스크를 찾기에 앞서 인천박물관협의회 탐방단은 아침 일찍 보스포러스 해협을 항해한 터였다. 유럽과 아시아 한 가운데를 흐르는, 32km에 이르는 해협이다. 한 쪽은 모스크와 같은 오스만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고 다른 한 방향은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이채로워 보였다. '트로이전쟁'이 뱃길을 두고 벌인 헤게모니 싸움이었듯이, 그리스인들은 보스포러스해협과 같은 뱃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보스포러스(소가 건너간 곳)가, 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이오'라는 요정이 암소로 변해 해협을 건너간 뒤 지어진 이름이고 보면, 이곳은 수천 년 간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보트 2층 난간에 서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눈 앞으로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선두와 선미로 갈매기들이 따라 붙은 것이다. 저 바닷새들의 전생은 혹시 수천 년 전 혹은 수백 년 전, 해협을 오가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선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중세의 비밀을 잔뜩 품고 있는 것 같던 짙푸른 바다가 새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뭐라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