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98 강화도의 역사, 문화, 행정 강화도가 '민족의 성지'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화도엔 우선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흔적이 역력하다.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린 '참성단', 그의 세 아들이 축조한 '정족산성'. 이 같은 사실만 봐도 강화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라 할 수 있다. 단군은 어째서 고조선의 그 많은 땅 가운데 강화도를 택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강화도의 비옥한 자연환경 때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코넬리어스 오스굿 역시 단군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화의 이야기는 기원전 3000년 전의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한국인의 조상인 단군은 두 개의 제단을 지었는데 하나는 강화도 남쪽 마리산에,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재단에서 북쪽으로 12마일쯤 떨어진 10.. 2017. 12. 4. 누가 인천을 움직이는가 김진국의 세상바라기 논설위원 2017년 11월 28일 00:05 화요일 인천은 누가 움직이는가. 인천엔 사람이 있는가. '송도 6·8공구 특혜의혹'사태를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인천을 끌어가는 주체는 어떤 사람들일까. 중대한 현안이 닥쳤을 때 누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할까. 송도 6·8공구 특혜의혹은 바다를 매립한 땅을 개발하면서 누군가 '부당한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한가운데 151층짜리 빌딩이 있다. 송도 6·8공구 개발의 큰 축은 송도국제도시에 151층 빌딩을 세우는 것이다. 그 빌딩을 인천의 랜드마크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층빌딩 얘기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아파트 개발을 통한 막대한 이익에 대한 논란만 판치는 상황이다. 151층 건설 계획이 사.. 2017. 12. 2. 강화의 자연환경과 교통·산업 ▲ 코넬리어스 오스굿이 1947년 보았던 강화도와 70년 뒤인 현재의 강화도는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당시 강화도가 직조산업과 농업, 어업의 도시였다면 현재는 역사문화관광도시 성격이 강하다. 비가 내리던 7월31일 고려궁지 뒤쪽 송악산에서 강화읍내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오스굿은 선두리를 통해 강화도와 우리나라를 보려고 노력했다. 사진은 선두5리 전경으로 갯벌위에 보트들이 있고 농가는 펜션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울퉁불퉁한 지형… 포구까지 뻗은 자갈길엔 낡은 버스 몇대만 울타리 속 '인삼'·고품질 '강화섬쌀', 지역 대표 먹거리로 우뚝 강화도 '고려궁지'에 비가 내렸다. 궁지 위에 펼쳐진 연두빛 잔디 위로, 송악산에 서 있는 나뭇가지들 위로 장맛비가 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눈에 .. 2017. 11. 29. 코넬리어스 오스굿 '코넬리어스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5) 세계적인 인류학자로 미국 예일대교수를 지냈다. 그가 1951년 펴낸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는 문화인류학자의 눈으로 강화도를 통해 우리나라를 최초로 주목한 연구서다. 1947년 강화도에서 현지 조사를 했던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굿은 한국인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영국인들과 달리 오히려 감정적 판단을 하는 아일랜드인과 유사하다며 '오리엔탈 아이리시'라고 불렀다. 오스굿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무천, 영고, 동맹 같은 축제를 통해 가무에 도취했던 역사가 있다"며 한국인들이 통음하고 포식하고 노래를 잘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구강 가학적 경향을 가진 오럴 사디스트(oral sadist)이며 입으로 .. 2017. 11. 12.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