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 다 줄 것 같던 두 다리는 세월의 무게에 주저 앉기 시작하며, 내가 알던 것들 것들은 하루가 다르게 잊혀져 간다. 노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것들을 놓아 주는 과정, 성인에서 다시 유아로 돌아가는 무력함을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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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할머니도 흘러가는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할머니는 치매를 선고 받으셨다. 치매는 할머니가 가진 것들을 더 빠르게 앗아 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머릿속에 있는 최근의 기억들부터 조금씩 그리고 점점 빠르게. 어제의 일을 까먹기 시작하던 것이 지금은 손주인 내 이름도, 장녀인 엄마와 장남인 큰 외삼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말에 있던 할머니의 팔순잔치에서 나는 2년만에 할머니에게 내 이름이 불렸다. '거기 아저씨', '아들'이 아닌 '정훈아'로 불린 것이다. 할머니는 "정훈아, 동생하고 사이좋게, 건강하게 지내고해여. 그리고 엄마한테 잘혀" 하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시는 할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치매를 앓게 된 이후로 할머니는 눈물이 부쩍 많아 지셨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 대한 속상함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헌데아이러니하게 웃음도 덩달아 많아 지셨다. 그동안 이고 있던 걱정들과 말 못했던 일들을 잊고 나서야 찾아온 웃음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웃음이 싫지 않다. 할머니의 웃음은 정말이지 근심 없이 행복해보이는 그런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 웃음을 보노라면 보는 이도 따라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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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팔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나쁜 기억들은 잊고 좋은 기억들만 추억하시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밝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길 바라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16. 11.21 손주 이정훈 올림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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