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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6인하저널리즘

낯선 둘, 친구가 되어 돌아오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1. 8.



인사를 건넨 지 두 달. 친구라고 하기는 어색한 이와 해외여행을 떠났다. 


작년 겨울, 대형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알바생만 15명이 넘는 큰 매장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파트의 직원들과는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 눈이 마주치면 간단히 고개나 까딱하는 정도였다. 그 애도 그런 어색한 사람 중 하나였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맡고 있는 키 작은 여자애. 나와 동갑인 23살.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해가 바뀌고 내가 일하는 디자인 파트에 새 인원이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일하던 그 애였다. 회화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시간이 맞지 않아 파트를 옮겼다고 했다. 그제서야 뻘쭘한 첫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어색하게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과 나이, 사는 곳. 간단한 정보를 주고받다 현재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로 주제가 옮겨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그녀 사립 예술중·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연예인 배출학교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6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무용과 노래, 연기를 배웠다. 그리고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맞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 지 넉 달 만에 자퇴를 했다. 이후 전공을 바꾸고 다른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곳도 맞지 않았다. 3번째 들어간 대학까지 그만둔 뒤, 그녀는 돈을 벌어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친해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무난하게 대학을 다니와 참 다른 삶이었다. 공감대가 없었다. 사이좋은 동료로 지내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 연락하지 않겠지. 마음 속에 선을 그었다.


같이 일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봄을 기다릴 때면 의례 나올법한 얘기였다. 그녀는 대만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가보고 싶었던 나라라고 맞장구를 쳤. 우리는 신이 나서 대만의 음식과 풍경에 대해 떠들었다. 한참 수다를 떨고 났을 때 그녀 웃으며 같이 가자고 말했다.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볍게 동의했다. 


다음 날 그녀는 대만 여행 책을 들고 왔다. 책을 펼쳐들고 내게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다. '진짜 가자는 건가? 그냥 책으로 구경하자는 거겠지?' 당황한 나는 어영부영 대꾸를 했다. 용캉지에, 동취...유명한 동네를 꼽으며 가상의 여행 계획을 짰다. 책자를 뒤적거리는 사이 정말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행 책자를 대충 다 훑어봤다 싶을 때,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언제쯤 갈까?" 

'뭐야, 진짜 가자는 거야?' 


그제야 진심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자는 얘기였음을 알았다. 이성적으로는 만난지 한 달 남짓 된 애랑 무슨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방금 완독한 여행책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중화 음식과 야경을 즐기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만난 지 겨우 한 달 밖에 안 된 사람. 싸우면 그대로 인연 끊으면 되지.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다음달에 가자."


그렇게 나는 3월의 어느 날, 그녀타이베이로 떠났다.



여행은 즐거웠다. 우리는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었다. 대만의 낯선 향신료가 입에 맞았고 서로 맛없다는 음식이 없었다. 걷는 것도 좋아해서 전망대 대신 1시간 정도 산을 올라가 야경을 감상했다. 아침 알람에 깼다가도 잠이 오면 슬금슬금 오전의 일정을 취소했다. 공통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녀와 나의 여행 취향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3박 4일의 여행 기간동안 우리는 한 번 얼굴 붉히는 일 없이, 타이베이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술자리나 밥 약속에는 누구와도 편하게 어울렸지만, 거기까지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대학교 동기들과도 함께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24살이 되고나서야 만난 낯선 이와 떠난 여행이 이렇게 즐겁다니. 인연이 있다는 건 이런걸까 싶었다.


대만을 다녀오고도 우리는 여러 번 어울려 놀았다. 그녀와 만난 지 10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우리는 수없이 많은 하루를 함께 놀고, 3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이제 우리 사이에서 수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녀가 누구냐고 묻던 내 지인들은 어느새 "또 걔랑 놀아? 너네 진짜 친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우리가 처음 여행을 가게 됐을 때의 일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한테 왜 여행을 가자고 했는지 묻자 그녀는 말했다. 여행 책자를 갖고왔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도 그냥 던져본 얘기였다고. 반쯤은 농담 삼아 한 말에 내가 선뜻 가자고 대답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 때 그녀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는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공통점이 없어.'라는 틀에 갇혀서 좋은 친구를 놓쳤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매번 이 인연이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다음 여행 계획을 짜고 있다. 베트남, 혹은 제주도. 어디로 가더라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언론정보학과 12122957 왕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