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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곶냉면2

남북이산가족 상봉 선친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였다. 한국전쟁 당시 잠깐 피란을 갔다 오겠다며 남으로 내려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간절히 그리며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둔 채. '통일'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숭고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선친을 향한 얼마간의 원망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강산에의 '라구요'를 부를 때 이따금 목이 메고 눈물을 찔끔거리는 이유를 사람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빛 바랜 흑백사진만으로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부터이다. 북쪽엔 어머니, 남쪽엔 처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버지가 돼 보니 .. 2018. 5. 3.
백령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들은 1951년 1월, 서해 최북단 백령섬.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백령도 사람들의 십 수배인 2만 명의 사람들은 인민군을 피해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다. "내 금세 돌아오마" "며칠만 참고 있어라". 고향을 떠나올 때 부모, 처자식에게 던진 그 말이 반세기 넘는 마지막 작별의 인사가 될 줄이야….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1953년 남북을 가로막는 두꺼운 장벽이 쳐졌다. 육지는 3·8선으로, 바다는 북방한계선(NLL)으로 나뉘어지며 사람들도 남쪽사람, 북쪽사람으로 갈라졌다. 고향에 돌아가길 포기한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인천이나 태안 같은 육지로 빠져나갔다. 오매불망, 고향을 잊지 못 하는 사람들은 백령섬에 남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2016.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