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8-1 인하온라인저널리즘

* 봄은 외할아버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15.


"잠깐 행정반으로 와봐. 할 말이 있다." 선임을 따라 걸어가는 내내 불안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고, 달려가서 짐부터 쌌다. 마산 가는 버스에서는 쉼없이 울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슬퍼하는 가족들이 보였다. 주변 모든 것에 어두운 먹빛이 드리워보였다. 2015년 4월, 의무경찰 복무 중 있었던 일이다. 


나는 유치원을 들어가기 전까지 외가에서 자랐다. 부모님 두 분이 워낙 바쁘기도 했고, 그때는 집안 형편도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가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다. 맛있는 단감으로 유명한 마을이고, 외할아버지도 단감농사를 하셨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유자적한 마을의 분위기와 햇살의 포근함이 떠오른다.


외할아버지는 명절마다 바빴다. 나와 사촌동생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친 장난을 매번 수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잘못을 꾸짖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어리니까 장난도 칠 수 있는 거야' 라며 매번 우리 편에 섰다. 지금와서 보면 마땅히 혼날 일이지만, 나는 그런 외할아버지가 좋았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친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었다. 


내가 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고3 시절 입시준비를 할 때부터였다. 당시 나는 어떤 학교의 어떤 과를 갈지가 너무 고민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약사로서 20년을 살다가, 과수원농사를 하게 된 사연을 재밌게 얘기했다. 그는 '매일해도 내일이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일'을 찾는 것이 행복이고, 이를 위해 첫 단추를 잘 꿰라'고 조언했다. 여름 밤, 계곡에서 수박을 먹으며 잔잔히 나눈 이야기였다. 


그는 언제나 '나다움'을 존중했다. 그는 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생각을 하건 나를 응원하고 존중했다.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깊은 아픔마저 빠르게 치유했다. 입대 하던 날, 손을 꼭 잡아주며 했던 '잘 다녀온나' 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큰 상실의 아픔을 남겼다. 설 맞이 특박이 주어졌는데, 친구를 만난다며 외가에 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느라,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뵙지도 못한 것이다. 그때 유독 나를 보고싶어 하셨다는 말이 마음에 아프게 꽂혔다. 


나는 이런 아픔을 안은 채 4월 16일 세월호 집회를 진압하던 중 부상을 당했다. 낯설고 열악한 부대에서의 적응과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일삼는 시위대들 때문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던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넘어져 눈을 감았다. 외할아버지가 나타나 일으켜줬으면 싶었다. 지나고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가장 어렵고 아픈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얼어붙은 모든 것을 녹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분다봄은 치유의 계절이다. 금방 떨어질 벚꽃 잎을 보며 아쉬워하고 눈에 담아두려 조바심 내지 말아야겠다. 내년 이맘때 또다시 아름답게 피어나 사람들에게 치유와 행복을 주는 벚꽃나무의 강인함을 사랑하겠다. 내가 여전히 그와의 시간을 기억하듯이.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봄이다./박권웅 



   

4월의 벚꽃



 

'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 > 2018-1 인하온라인저널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월의 어느 날  (0) 2018.04.15
* 4월은 잔인한 달  (0) 2018.04.15
* 환절기  (0) 2018.04.15
* 게으르고 싶은 계절엔  (0) 2018.04.15
* 벚꽃 지길 기다리며  (0) 2018.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