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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지리지8

“고향 인천에‘그리운 금강산’ 악보 기증하게 돼 무한한 영광이자 감사”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이 전 생애에 걸쳐 작곡한 수기 악보 등을 고향 인천에 기증하기로 했다. 최영섭 작곡가가 지난 9월 8일 송도국제도시 광원아트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피아노 멜로디는 음표가 되어 나풀나풀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선가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8분, 4분, 16분…, 음표들이 일제히 푸른 바람에 몸을 실었다. 바람은 금강산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운 금강산’으로. 시나브로 날이 어두워질 때, 최영섭(92)의 손끝을 타고 나온 음표들은 금강산 밤하늘을 흐를 것이었다. 오선지 같은 은하수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날 것이었다. 지난 9월 8일 오후 송도국제도시 광원아트홀.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의 연주는 구순이 .. 2021. 10. 7.
2016 전국체전,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 2016 제97회 전국체육대회에 다시 보는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 전 국가대표 투포환 선수를 만나다 버스 차창에 무수한 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물방울들이 미끄러지듯 사선으로 떨어져내렸다. 부풀어오르는 연둣빛 이파리에도, 펄럭거리는 푸른색의 비닐우산 위로도 빗방울이 굴러다녔다. 버스 맨 뒤칸에 앉아 차장 밖에 펼쳐진 비 오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웬만한 남자보다 키가 크고 체격도 아주 좋은 여학생이었다. “우욱…….” 자리에서 일어나던 여학생이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오른쪽 턱에 붙인 붕대는 이미 시뻘건 피로 물들었고, 오른쪽 팔꿈치는 퉁퉁 부어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여학생이 낑낑대며 다시 일어섰다. 쿵쿵 소리를 내며 여학.. 2016. 10. 7.
탤런트 전노민의 삶과 꿈 메이저리거 꿈꾸던 소년의 영화 같은 삶 “형아 같이 가아~, 으~앙” 재용이 수봉산으로 올라가는 형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재용의 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봉산 꼭대기로 줄행랑을 쳤다. 산이라고 해봐야 해발 100미터도 되지 않는 야트막한 동네뒷산이었지만 일곱살 아이가 뛰어올라가기엔 히말라야 못지않은 난코스처럼 느껴졌다. “하~아, 하~아” 얼마 못 가 멈춘 재용이 가쁜숨을 몰아쉬었다. 형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날쌘 형을 따라잡기란 수봉산에 사는 다람쥐를 맨손으로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약이 오른 재용이 제자리에 서서 돌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만큼이나 작은 돌들은 몇 미터 가지 못해 툭툭 떨어졌다. 허탈해진 재용이 씩씩거리며 산 정상 쪽을 노려보았다. 어디로.. 2016. 9. 29.
영화감독 임순례 무네미고개 넘던 산골소녀, 유럽을 넘는 영화감독으로 소녀의 얼굴이 해바라기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 있었다. 새까만 낯빛에 앞머리카락을 짧게 깎아올린 단발머리 소녀였다. 소녀가 논길을 폴짝폴짝 뛸 때마다 단발머리가 가발처럼 들썩거렸다. 짧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이따금씩 발길을 멈추고 깡통 속을 들여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깡통 안에는 알록달록한 구슬이 가득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 배를 쓰다듬듯, 깡통을 어루만지던 소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새카만 얼굴에 대비된 소녀의 이가 하얗게 반짝였다. 씩씩거리며 ‘무네미고개’를 넘은 소녀가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빨리 집에 가서 언니와 오빠들에게 ‘전리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달리던 소녀가 몇 발자국 못 가 코가 뾰족한 검정고무신이 벗겨지면.. 2016.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