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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8-1 인하온라인저널리즘

*따뜻했던 그 해 4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2.


나와 4월

 

4월의 한적한 아칸소 해질녘/박정원




"나 지금 한국이야"


일본인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한국에 놀러왔다며 잘지내냐고,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단다.

야스히토는 미국 교환학생 당시 알고 지냈던 친구다. 


야스히토의 반갑다는 메시지에 잊고 있었던 미국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작년, 딱 이맘때쯤이었다.


작년의 4월은 4개월간의 짧은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아칸소’라는 미국의 정든 주를 떠나는 달이었다. 

그 곳을 떠나며 한 달 내내 이별을 준비했던 것 같다.


1월 초, 처음 미국의 아칸소에 도착했을 때,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 막막하고 힘들었다.
도착하자 마자 일주일 정도는 밥도 거의 못 먹었다. 유럽에 갔을 때도, 보라카이, 홍콩에 갔을 때도 하지 않았던 물갈이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만에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해져서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먹방’영상을 챙겨봤다. 

물갈이라고 하는 배앓이가 끝날 때쯤 수강신청을 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은 알아듣기 힘들었고 심지어 어떤 수업은 수강신청 담당자가 마음대로 수업을 바꿔버리고 내게 말을 안 해줘서 2주만에 처음 들어갔다. 

또 학교 근처는 한국 대학가와는 다르게 휑해서 차가 없으면 갈 수 있는 식당도 거의 없었다. 교환학생에게 차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작고 낯선 동네에 정을 붙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2, 3, 4월 고작 세 달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그곳에 무섭게 정이 들었다.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나긴 했지만 해장을 햄버거로 할 만큼 그 곳의 음식에 익숙해졌고 먹는 양도 두세 달 만에 두배 이상 늘었다. 

슬슬 귀가 열려, 수업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래도 알아듣기 힘들었던 영어 문학 수업은 옆에서 계속 도움을 준 Jaycie라는 친구 덕분에 어찌저찌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Jaycie는 나를 외국인 친구가 아닌 그냥 친구로 대했고 집으로 초대해서 요리를 해주며 공부를 도와주었다. 

또 이제는 학교 근처의 휑함이 여유로워 좋았다.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과 기숙사로 걸어가던 길, 아무 걱정없이 늦잠을 자고 학교 식당까지 쌩얼로 걸어가던 길, 모두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과 여유였다. 
학교 셔틀을 자유롭게 이용해 멀리 있는 마트나 식당에 놀러갔다. 혹시 셔틀 시간을 놓치게 되더라도 차를 가진 친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이동이 가능했다. 같은 거실을 공유했던 미국인 룸메이트들, 한국인 유학생들.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작디 작은 사회에서 매일 마주치다 보니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낯설었던 동네가 익숙해졌고 그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해 처음 지은 Kelly라는 어색했던 이름이 익숙해질 때쯤, 이별을 준비해야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동네에, 사람들에 깊게 정들었던 만큼 그 곳을 떠날 생각을 하면 괜히 슬펐다. 

4월 한 달 동안 그랬다.

미리 짐을 한국으로 부쳐 최소한의 짐만 남겼고 같이 지내던 친구들은 여행을 위해 하나 둘 먼저 아칸소를 떠났다. 그 중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둘이 기숙사를 떠났을 때는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서 같은 학교를 다닐 것을 아는데도 세상을 잃은 것처럼 슬퍼서 하루 종일 울고 다음날 그 친구들과 전화를 하면서 또 울고 그냥 계속 울었다. 텅 빈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정든 아칸소를 떠났다.

 




"반가워, 시험때문에 시간 못내서 미안해, 잘 지내다 가!"


당장 뛰쳐 나가서 한국 관광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책상위에 쌓인 과제와 코앞에 닥친 시험일정들이 적힌 달력이 보였다. 

결국, 친구와 약속은 잡지 못하고 대신 심심한 사과를 건냈다.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보니 며칠동안 환하게 피어 괜히 마음을 설레게 하던 벚꽃이 벌써 거의 다 졌다.

고작 며칠 예쁘게 피어 나와 마주했지만, 그 사이 깊게 정들었는지 떨어지는 꽃잎들이 사뭇 아쉽다. 

떨어지는 벚꽃에 아쉬울 때마다 정든 아칸소와 헤어짐을 준비했던, 그 해의 4월이 생각날 것 같다./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