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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8-1 인하온라인저널리즘

* 봄바람에 실려온 4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9.

나와 4월


나는 예전부터 4월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땐 죽을 사()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조금 더 크고 나서는 달력에 빨간 날이라곤 일요일 뿐인 4월이 원망스러웠다. 대학생이 된 후 4월은 완연한 봄을 뒤로한 채 도서관에서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잔인한 달이다. 적어놓고 보니 많이 유치하지만 나는 항상 이런 이유들로 4웡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4월을 반기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가진 '애매함' 때문이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과 새학기가 시작되는 3, 9월. 여름방학을 맞는 7,8월과 겨울방학을 맞는 12월. 12개의 달로 이루어진 1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달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 4월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도, 떠나보내는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기에 위치해있다. 새 학기의 설렘이 있는 3월과 빨간 날이 넘치는 5월 사이에 있는 4월은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이렇게 많은데도 4월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때였다. 고등학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도 잠시, 나와 친구들은 '수능' 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볕 좋은 날 예쁜 풍경들을 제쳐 두고 갑갑한 교실 안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하는 일은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 짓던 소녀들을 점점 메마르게 했다. 이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벚꽃이 만개한 4월이 찾아왔다. 


매년 4월 첫째 주 체육시간, 학교 옆 오래 된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학생들을 위한 체육 선생님의 작은 선물이었다. 우리들은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는 등 오랜만에 찾아온 외출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벚꽃이 만개한 나무들이 만든 벚꽃터널을 걷고 있으니 4월이 싫은 이유들쯤은 살랑대는 봄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공부도, 빨간 날이 하나 없다는 사실도. 지금 이 순간이 죽을 사()와 발음이 같은 달인지 아닌지 조차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오히려 언제 싫어했냐는 듯 내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꽃들이 하나 둘 떨어질 즈음엔 아쉽다는 생긱까지 든다. 아직 오지 않은 4월을 미리서부터 미워했던 마음이 무색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4월 뿐은 아니다. 처음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던 날, 보조 바퀴 없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다. 어린 아이의 눈에 두발 자전거는 너무 아슬아슬 해보였고, 완전히 잘 탈 수 있을 때 까지 넘어질 과정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꼭 잡아주겠다는 아빠의 말에 조심스레 올라탄 나는 언제 떼를 부렸댜는 듯 즐겁게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며 만난 풍경들과 시원한 바람은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스무살이 되면 또각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어린 아이가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스물 셋이 되었다. 스물 셋이 된 지금도 생각한다. 언제쯤 또각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린 내가 상상했던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부딪혀야할 벽이 많다. 수많은 벽들을 생각하며 겁부터 먹고 있는 나에게 4월이 속삭이다. '늘 그렇듯 아무 일 아닐거야.' 오랜만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맞은 4월의 봄바람은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이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