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깎아놓은 푸른사과 인천중동우체국

by 김진국기자 2016. 9. 21.

 

 

'깎아놓은 푸른사과' 같은 저 건물은 거대한 사랑의 메신저다. 지금은 크고 작은 택배상자로 가득하지만. 과거 이 곳엔 편지와 전보가 넘쳐났다.  
구구절절한 연애편지에서부터 두고 온 고향의 부모에게 보내는 불효자 아닌 불효자의 편지까지, 우체국은 무수한 사연을 품은 우리네 '삶의 정거장'이었다. 때로 '아버지 위독'과 같은 전보를 받고 상태를 물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가봉대통령 방한 등 기념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우체국 앞엔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다. 모야봐야 그다지 큰 쓸모가 없는 것이었지만 너도나도 기념우표를 사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그 때 산 우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인천우체국. 그 앞에서 우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과 기념우표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렇지만 우체국건물만큼은 여전히 한 자리에서 인천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인천중동우체국'(인천 중구 제물량로 183)이 이 자리에 선 건 1923년 11월이다.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는 공법인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올린 2층 벽돌조건물로 지어졌다. 사거리 모서리에 주출입구를 두어 정면으로 처리한 것이 독특하다. 이 건물은 그리스양식에서 나타나는 원형기둥과 르네상스양식에서 보이는 러스티케이션의 절충주의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인천에서 우편업무를 시작한 건 훨씬 이전인 1884년 부터였다. 그해 11월17일 서울과 인천에 우정총국과 분국을 동시에 설치한다.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서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근대적 통신 제도의 개막이었다.  

인천분국장엔 민족 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이 임명됐다. 그러나 12월4일 우정총국 개업 축하연에서 발생한 갑신정변으로 5일 뒤인 9일 폐쇄된다. 근대식 우편시스템을 재개한 때는 1895년이다. 이후 일제는 1905년 5월 인천우체사를 포함, 임시우체소를 인천우편국으로 통합해 광복 전까지 운영한다.  

우체국 주변 인천항 방향엔 올해 전철역이 하나 들어섰다. 수인선 '신포역'이다. 올 초 '송도~인천' 역 7.3㎞ 구간이 개통하면서 들어선 '역사'다. '오이도~송도'역 구간은 2012년 열렸고, '한대~수원'역 19.9㎞ 구간이 마무리되는 내년이면 수인선 전 구간에 열차가 달릴 예정이다.

1937년 첫 기적을 울린 수인선은 일제가 식민지 침탈을 위해 놓은 철도였다. 일제강점기 이 열차 안엔 일본인들에게 공급할 쌀과 소금이 넘쳐났다. 소래·남동의 염전과 여주·이천 등지의 쌀이 수인선에 실려 인천항으로 수송됐다. 광복 이후 이 기능이 사라지고, 교통수단이 많아지며 이용객은 점차 줄었다. 1995년, 수인선은 결국 58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올해부터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인선'은 그러나 낭만의 철도라기보다는 생존의 철도였다. 바닷가 여인들은 곤쟁이젓갈이 넘쳐나는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 공중에 뜬 철길을 성큼성큼 걸어다녔다. 파르스름한 새벽부터 소쩍새가 우는 캄캄한 밤까지, 수인선 철길을 위태롭게 걸으며 외쳤다. "젓갈 사세요오~, 젓갈이요오~"  

달리는 열차에 사람들이 매달린 모습도 흔한 풍경이었다. 자리가 꽉 차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기차 밖에 매달려서라도 학교에 가야 했다. 꼬마열차가 가파른 경사길인 용현동 '똥고개'에 이르면 학생들은 철로에 뛰어내려 열차를 밀어올렸다. 그렇듯 인천사람의 애환을 싣고 달렸던 수인선이 부활하면서 신포역이 새로 들어선 것이다.  

인천역을 나와 횡단보도만 건너면 '중국인거리'를 만나고 신포역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인천의 명동 '신포동'에 진입한다. 수인선으로 타고 중구를 찾은 사람들은 이국적 풍경을 보는 '눈맛'과 중국요리를 맛보는 '입맛'을 동시에 즐긴다. 요즘 신포동엔 개성 만점의 갤러리, 분위기 좋은 카페, 맛있는 음식점 등이 부쩍 늘었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신포역을 나와 '가을우체국'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을햇살 만큼이나 화사하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

<저작권자 ⓒ 인천일보 (http://www.incheonilb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