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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 논설실의 아침17

문화예술 스폰서십 여기,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한 예술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열정을 너무 사랑해 예술을 하지 못 하고는 견딜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은 '자아실현도 좋지만 먹고 살 길도 좀 찾아보라'고 권하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올 인' 하지 않고는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타를 기획적으로 길러내는 '스타 시스템'에 합류할 기회도 없다. 그의 수입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커피숍에서 받는 얼마간의 돈이 전부이다. 그는 '뜰 때'까지 무명예술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얼마 전 그는 공공기관이 문화예술인들에게 주는 지원비 신청을 했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아 탈락하고 말았다. 벌써 몇 년 째인지 모른다. 그는 지쳐가고 있다.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은.. 2016. 9. 14.
우리에게 대중문화는 무엇인가 신해철이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에 큰 획을 긋고 떠나갔다. 88년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뛰어난 음악성과 독설로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아온 그였지만 50살도 안돼 영면했다는 사실이 우울하게 다가온다. '마왕'으로 불릴만큼 신해철의 카리스마는 남달랐다. 그러면서도 매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과 어록에서 신해철의 순수성은 잘 드러난다. 지난 2011년 한 방송에 출연한 신해철은 아내 얘기를 하던 중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당신(아내 윤원희)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넥스트 시절 그가 작사작곡한 '날아라 병아리'란 노래는 한 아이가 육교 위에서 산 병아리를 집에서 기르다 죽어 슬픔에 잠긴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애호가.. 2014. 11. 3.
책으로 '행복한 영혼'의 도시를 인류의 문명을 급속하게 진전시킨 '인쇄술'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은 여러 유물과 기록에서 나타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고려주자본 하권 1책은 현존하는 최고 금속활자인쇄본이다. 15세기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약 70년 앞섰다는 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이 보다 약 150년 앞선 (1234)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현존하지 않고 이규보의 기록으로만 남아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4년 전, 현존하면서도 보다 138년 앞선 고려 금속활자가 발견되면서 고려의 금속활자는 일반화된 문화였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다보성고미술관'이 공개한 '증도가자'와 는 진위논란에도 불구하고 학계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줬다. 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을 1239년 목판에 옮겨 .. 2014. 10. 30.
인천의 언론 '대중일보'를 기리며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3년 8월 31일 오후 11시30분 인하공사(중앙정보부 인천분실) 지하실. 차가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백열등에 불이 켜졌다. 칠순 노인과 중장년의 사내가 입을 꾹 다문 채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노인은 당시 인천의 대표 신문이었던 '경기매일신문' 송수안 발행인이었고, 중장년의 사내는 김형희 편집국장이었다. 밖에서부터 군화소리가 점점 가깝게 다가오더니 쾅 하고 문이 열리면서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험악한 인상의 군인들이었다. "빨리 찍어!" 중앙정보부 요원들로 보이는 군복 차림의 사내들이 서류를 디밀었다. '3사 통합에 찬성하며 9월1일부터는 경기매일신문을 발행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였다. 송 발행인.. 2014.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