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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

유럽·아시아 관문 … 동서양 융합 문명 꽃피우다

by 김진국기자 2014. 9. 25.

그리스 현지시각 지난 3월27일 오전, 인천박물관협의회 회원들이 세계문화유산 제1호'파르테논신전'을 찾았을 때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아크로폴리스를 찾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주변에 앉거나 서서 신전을 바라보고 있다.

술탄(Sultan·이슬람국가의 왕)의 깊은 안광처럼 푸른 빛깔이 감도는 모스크(mosque·예배당). 창백한 미소와 관능적 곡선의 육체를 지닌 여신이 하얀 실루엣을 흩날리는 신전. 인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가 지난 달 하순 '터키'와 '그리스' 땅을 밟았다. 3월21일~30일 진행된 '2014 해외박물관탐방'은 이슬람세계와 그리스신화의 현장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관조적으로 탐방단은 유럽문명의 기원인 신비의 제국들과 밀담을 나누었다. 숨가빴던 7박10일의 일정 속에서 만난 터키와 그리스의 2014년 봄을 7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인천박물관협의회 회원과 관계자 18인이 터키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한 때는 현지시각 3월22일 새벽 4시. 비행기를 12시간이나 탄 터라 일행의 모습은 하나같이 고단해 보였다.

짐을 찾은 뒤 공항 휴게실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의자 위에 누워 잠 자는 사람들이다. 집시들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이었지만 공항 안에선 몇 무리의 사람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터키의 3월은 성지순례가 가장 많은 달이었다. 파르스름한 이스탄불의 새벽하늘을 보며 공항을 빠져 나왔다.

거리 곳곳에 집권당인 '정의개발당' 깃발과 '에르도안' 현 수상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3월30일 지방선거를 치르는 터키 정국은 어수선해 보였다.

'고려정'이라는 식당에서 닭계장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한 일행이 처음 찾은 곳은 '에미뇨뉴항'이다. 흑해와 에게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루스해협'을 보기 위해 보트에 올랐다.

보스포루스는 터키와 그리스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사연과 찬연한 문화를 품고 있는 해협이다.

하얀 보트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도도하게 흐르는 해협을 가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터키는 그렇게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품고 있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갈라타다리'를 반환점으로 50분쯤 돌았을까.

보트의 선미가 에미뇨뉴항에 닿았다. 어디선가 팽이, 가죽모자, 스카프를 든 사람들이 다가오더니 "1달러" "3달러" "5달러"하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가족옷과 카페트는 터키의 특산품이었지만 길거리 상인들이 들이댄 것들은 지저분하고 조잡해 보였다.

누군가 "중국산"이라고 귀띔했다.

버스에 오른 일행이 향한 곳은 '그랜드바자르'(Grand Bazaar).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시장 같은 이 곳은 4400여 개의 상점이 입점한 이스탄불 재래시장이다.

오스만제국(1299년~1922년 소아시아 지방에 존재했던 이슬람 제국)이 이스탄불에 임시궁을 만들면서 궁전 옆에 대규모 시장을 조성했다. 상인들로부터 필요할 때마다 세금을 거두려는 목적도 있었다.

대리석으로 세운 아치형 문 위에 1461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 시기 세워졌다는 얘기다.

반질반질한 대리석이 깔린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귀금속, 찻잔 도자기류, 양탄자 등을 파는 상점이 많이 눈에 띈다. 푸른 테두리에 까만 점이 박힌 구슬로 만든 팔찌는 '악마의 눈'이다.

악마의 눈을 팔찌나 목걸이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있을 경우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을 터키인들은 갖고 있었다.

오전 10시30분 그랜드바자르 광장에 모인 일행이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6개의 첨탑을 가졌으며, 실내에 푸른 타일이 있어 '블루모스크'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슬람사원이다.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명령에 따라 1609년 착공, 1616년에 완성한 이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는 최대 걸작이다.

블루모스크를 돌아본 일행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을 비롯, 박물관엔 기원전 6세기부터 4세기 말 사이 페니키아 지방을 지배한 왕조의 석관들이 즐비했다.

이 박물관은 '톱카프궁전' 한쪽 경사진 길 아래 있었으므로 일행은 여러 개의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톱카프궁전을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4개의 정원으로 나뉘어진 톱카프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가 건설하기 시작, 1467년인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된 오스만제국 술탄들의 거처로 쓰인 궁전이다.

성 안에 사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모세의 지팡이'를 포함해 말로만 듣던 고대·중세 시대의 진귀한 유물들을 목격한 일행들의 표정이 점점 상기돼 갔다.

 

인천박물관협의회 회원들이'아나톨리안문명박물관'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가천박물관 심효섭 국장과 남궁성 간사, 정성길 혜명단청박물관 관장, 이한상 녹청자박물관 부장, 김종형 범패박물관 관장, 안경회 옥토끼우주센터 관장, 조계연 강화역사박물관 관장, 신유진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학예사, 최웅규 인천근대박물관 관장, 기정옥 회원, 변무숙 애보박물관 관장, 이귀례 회장, 함현옥 국제성서박물관 팀장, 이혜자 한국차문화협회 부회장, 원순미 인천어린이박물관 관장, 이용애 범패박물관 부관장, 이성진 부평역사박물관 국장.

7시간이라는 시차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인 23일, 일행은 아침 일찍부터 '카리예박물관', '모자이크박물관' '성소피아사원' '아르케올로지박물관'을 돌아보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둘째날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 장소로 향하던 오후 5시30분.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거대한 해일이 덮쳐오듯 이스탄불 시내로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엔 싸이카는 물론, 경찰버스까지 나와 차도를 꽉 막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버스는 한 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 한채 단 1cm도 움직이지 못 했다.

터키인들이 차도를 완벽하게 점거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다름아닌 선거유세에 참여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터키인들이었다. 일행은 결국 버스에서 내려 식당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식당은 유세장과 정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일행이 마침내 개미 한 마리 지나갈 틈조차 없을 만큼 빽빽한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나타난 두 명의 흑기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최웅규 인천근대박물관 관장과 정성길 혜명단청박물관 관장이다.

이 두 흑기사는 인천박물관협의회 단체점퍼인 야광색점퍼를 입고 맨 앞에서 이귀례 회장을 엄호하며 길을 트기 시작했다. 최 관장은 특히 준비해온 호루라기를 시끄럽게 불며 길을 헤쳐나갔다. 야광색점퍼를 입은 한 사람은 "삑 삑!" 호루라기를 시끄럽게 불고, 또 한 사람은 손을 훼훼 저어 비키라는 시늉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터키인들은 '어? 이게 뭐지?'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하나둘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거친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연어들처럼, 조금은 어리둥절해 하는 인파를 헤치고 진군한 일행은 결국 10여분 만에 식당에 도착했다. 일행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위급상황에 보여준 회원들의 기지와 협회의 단결력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원 가운데 한 명이 "터키사람 구경 원 없이 했다"고 하자 가이드 역시 "지금까지 터키에 살면서 이런 인파는 처음 봤다"고 털어놨다. 뉴스를 통해 확인된 이날 인파는 200만명에 육박했다. 24일 앙카라의 '아나톨리안 문명박물관'과 일명 '케말 파샤'로 불린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케말 아타튀르크' 영묘를 돌아본 일행은 오후 늦게 기암절벽의 땅, '카파도키아'에 도착, 잠을 청했다.

25일 새벽 어디선가 주문 같기도 하고 음악처럼도 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람교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육성인 '아잔'(Azza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다. 아잔은 반음씩 올라가거나 음을 꺽는 소리를 통해 이슬람세계의 신비감을 전해줬다. '우리가 정말 이슬람국가에 와 있구나….' 히잡을 쓰고 램프에 향불을 피우며 기도하는 무슬림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수도사들이 돌산에 굴을 뚫어 정진한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야외박물관'과 지하도시인 '데린구유'를 보고,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때는 26일 낮 2시25분쯤. 황무지 같은 터키와는 달리 그리스는 영화에서 보는 듯한 그런 코발트 블루의 바다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일행은 29일까지 3박4일간 그리스에 머물며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신전', 세계 10대 불가사의 '메테오라', 수니온곶의 '포세인돈신전'을 만나며 그리스의 진면모를 체험했다.

29일 저녁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인천박물관협의회 회원들의 눈빛들이 제각기 다른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검푸른 밤을 흐르는 무수한 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