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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

비잔틴 최고 걸작 … '성스런 지혜' 건물

by 김진국기자 2014. 9. 25.

아기아 소피아 박물관 내부

인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 일행을 가장 먼저 맞아준 이는 예수님이다. 박물관 입구 모자이크벽화로 그려진 예수의 표정은 온화했다. 지난 3월23일 오후 1시25분(현지시각) 찾은 '아기아소피아 박물관'은 1400년 역사가 고색창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대한 샹들리에, 돔형의 높은 천정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고대 기독교건축의 진수를 자랑했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 2개의 회랑과 마주쳤다. '나르텍스'라고 부르는 성당 현관은 기도를 준비하던 장소다.

금색모자이크로 장식된 천정을 올려다보며 본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큰 문은 황제와 대주교가 이용하던 것이다. 문 위로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천사의 모자이크화가 일행을 내려다 봤다. 본당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대리석항아리 2개가 놓여 있다. 그 뒤쪽으로 서 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 그리고 기둥에 손을 대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 다가가 보니 대리석에 난 작은 구멍으로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집어 넣은 채 손을 돌리고 있다. 성인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치유능력을 불어넣었다는 '땀 흘리는 기둥'이다. 이 곳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그것을 축으로 손을 한바퀴 돌리며 소원이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일행 중 몇 명이 손가락을 넣고 기도를 올렸다.

일행이 2층으로 방향을 잡았다. 1층에서 볼 때 2층은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았다. 착각이었다. 돌로 만든 비상구 통로에 들어서자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10번 정도 방향을 틀며 올랐을까. 드디어 2층에 닿았다. 여자들이 사용하던 2층은 중요한 종교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서쪽 회랑에 초록색으로 원이 그려진 부분은 비잔티움의 황후가 예배를 보던 장소다. 황후의 표정으로, 여성들이 그 자리에 서서 기념촬영을 한다. '콤네누스 황제' 모자이크와 '황후 조에' 모자이크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아기아소피아박물관'은 비잔티움제국이 6세기 완공한 성당으로 1400년 간 한자리를 지켜왔다.

'아기아소피아 성당'은 비잔티움 제국이 537년 완공했다. 360년 소피아성당 자리엔 '콘스탄티누스 2세'의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불에 탔고 416년 '테오도시우스 2세' 때 다시 교회가 세워진다. 그 교회마저 532년 반란으로 파괴되자 '유스타니우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규모 교회를 짓기로 결심한다. 추락한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5년 만에 완공돼 961년 간 교회로 운영됐으나,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1453년 부터 481년 간은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된다. 박물관으로 문을 연 때는 1935년이다.

'아기아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란 뜻이다. 성당을 지을 당시 황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기독교 우주관을 반영하고 싶었다. 모난 건물 위로 둥근 돔 모양의 지붕을 얹고, 교회가 하나임을 표현하기 위해 내부 기둥을 없앴다. 537년 완공식에 참석한 황제는 "완공을 허락해 주신 신께 영광을! 솔로몬(BC 10세기 중반에 활동한 다윗의 아들이자 계승자)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고 소리쳤다는 얘기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