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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웃터골운동장과 제물포고등학교

by 김진국기자 2017. 3. 8.



"퍽!"  

"퍽!"  
"따-악!"  
"와~아" 

3월 초순 일요일 한낮의 제물포고등학교 운동장. 네이비·붉은 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뒤엉켜 야구경기를 하고 있다. 선수들이 달리고 미끄러지고 하면서 운동장 위로 뽀얀 먼지가 일어난다. 관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함성과 탄식은 자유공원광장에까지 들릴 정도로 우렁차다. 제고 운동장은 크게 3개로 나눠진 모습이다. 야구연습을 하는 본 운동장, 테니스코트장, 농구장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운동선수들의 구호가 들리기 시작한 때는 1920년이다. 1919년 3·1운동에 놀란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문화정책'이란 것을 펴 나간다. 제고 운동장 자리에 2000여평에 이르는 공설운동장을 조성한 때가 이 시기다. 그러나 실은 인천스포츠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장소로 쓰려는 목적이 더 컸다. 더군다나 말이 운동장이지 '변소'(화장실)와 수도꼭지 밖에 없던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인 자유공원에서 50m 거리에 자리한 요지였다. 

어쨌거나 야구, 운동회 등 스포츠이벤트가 열리면서 공설운동장은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웃터골운동장'이라고도 불린 인천공설운동장은 이후 각종 프로 스포츠가 열린 인천 스포츠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웃터골은 너른 평지와 주변 산기슭이 스탠드 역할을 한 '자연경기장' 같은 곳이었다. 1934년 인천부립중학교(현 제물포고)에 자리를 내주고 도원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선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를 모태로 한 한용단을 비롯해 야구단이 활약을 펼쳤다.

도원동으로 이전을 한 인천공설운동장에선 야구뿐만 아니라 자전거경주대회, 초등학교 운동회, 연합체육제전 등이 치러졌다. 1960, 70년대엔 인천고, 동산고, 인천공고, 송도고의 운동선수들이 체육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인천공설운동장은 현재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했으며, 인천시민구단인 인천유나이티드 축구단이 상주하고 있다. 현재는 건물 지하에 대형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중·동구 지역민들의 쇼핑장소로 애용되고 있기도 하다.

1920년 '웃터골운동장'으로 불린 인천공설운동장 조성야구·운동회 등 스포츠 이벤트 열려 …

1934년 이전그 자리에 인천부립중 → 인천중 거쳐 '제물포고' 들어서

 


야구를 필두로 인천공설운동장의 역사를 열어젖힌 제고이지만 정작 자체 야구부를 창단한 때는 1982년이다. 고교야구붐이 일던 시기다. 제고 야구부는 창단 3년째인 1984년 에이스 허정욱을 앞세워 청룡기 돌풍을 일으키지만 군산상고에 패하면서 첫 우승의 꿈은 좌절된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1999년 부산에서 열린 화랑대기 우승에 성공한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상승곡선을 타면서 8강권 팀으로 성장했다. 

1954년 개교한 제고의 직접적 뿌리는 인천부립중학교가 1945년 이름을 바꾼 '인천중학교'다. 인중이 인천의 대표 중학교로 이름을 날리자 인천고등학교는 1960년 병설 '상인천중학교'를 설립한다. 제고-인고의 라이벌 구도가 생긴 때다. 1972년 중학교 입시 폐지와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두 학교의 자존심 싸움은 제고·인고로 넘어간다. 야구부 역시 제고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야구부를 운영해온 인고에 대항하기 위해 창단한 것이다. 두 학교 대결의 백미는 1991년 시작한 정기전이다. 매년 5~6월에 열리는 '제고-인고 정기전'은 야구·배구·농구 등의 종목에서 우열을 가리는데 하이라이트는 역시 야구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고가 제고에 앞섰지만 제고 동문회가 야구부에 공격적 후원을 하면서 제고의 성적이 상승하는 추세다.

제고는 전통적으로 '문예반'이 강한 학교였다. 제고 18회 졸업생이자 문예반 출신인 하종강 노동운동가는 "제고 문예반은 수백 명 입학생 가운데 소수 몇 명만 뽑는데 내가 입학할 당시 600명중 3명을 뽑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제고 문예반이 발행하는 <춘추>란 교지는 전국 고교 교지대회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제고는 명문대를 많이 가는 학교로도 유명했다. 70년대 동아일보 4컷 만화인 '고바우'에 짐을 싸서 인천으로 이사 가자는 내용이 실릴 정도였다. 초대 길영희 교장이 있을 때는 서울대 전과 수석을 휩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운동장을 등지고 나오는데 제고 농구부 셔틀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한 켠에 '제물포고 환경개선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교문 밖으로 나오자 '담배기상대슈퍼동화마을'이란 간판을 건 마트가 나타난다.  
"따-악!" "와~아" 어디선가, 웃터골운동장을 들썩이게 했던 한용단 야구팀의 함성이 귓전에 메아리친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