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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말레이시아

2. 무슬림의 삶을 엿보다

by 김진국기자 2016. 9. 22.

말레이시아 박물관을 가다...말레이시아의 영혼

 

하루 다섯번 기도·일생에 한번은 성지순례 다녀와야


돼지고기 금식·쇠고기도 '할란' 의식 치른 것만 섭취


일부다처제 허용 … 부인 차별땐 남편은 구속될 수도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오른손 손가락을 모아 밥을 다져먹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왼손은 화장실용이므로 잘못 사용하다간 무례한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비위생적으로 보인다는 사람도 있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손은 10번 이상, 발은 5차례 이상 씻는다.
이는 이슬람 5대교리 중 하나인 '하루 다섯 번 이상 기도하라'는 계율과 연관이 있다.
기도전에 눈·코·입은 물론 손·발을 정결하게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다.
아기가 태어났을때 이슬람교도라고 하지 않으면 출생신고도 받아주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무엇이고 창시자인 마호메트는 어떤 존재일까.
인천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는 지난 3월28일 '이슬람예술박물관'과 '국립이슬람사원'을 찾아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탐험했다.
인천시박물관협의회(인박협)가 '이슬람예술박물관'에 닿은 때는 지난 3월28일 오전 9시45분쯤.
일행이 들어가려 했지만 현지 관계자는 "입장 시간이 오전 10시"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오전 10시 정각.
인박협 일행은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사각의 장식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검은 '히잡'을 쓴 여성이 일행 앞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약간의 여드름이 피어있었지만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자신을 쥬니어 큐레이터라고 소개한 파르하니(26)는 말레이시아 국립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기도 했다.
파르하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오르자 모형으로 만들어 유리관 안에 넣은 여러 개의 이슬람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의 타지마할, 메카의 알하람사원, 우즈베키스탄의 아미 티몰 등 박물관은 전세계 유명 이슬람사원을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중국 시안의 이슬람사원은 사원이라기보다 사찰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슬람사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ecca)도 눈에 띄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에 있는 도시 메카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이다.
이슬람교 제1의 성지로, 이슬람교도들은 매일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호텔방 한 구석에선 녹색화살표가 종종 눈에 띈다.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다.
과거 사람들은 나침반을 들고 다니며 메카의 방향을 가늠했지만 지금은 곳곳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하루 다섯번 기도하라' '메카를 다녀와라'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코란을 따른다' '라마단 기간을 지켜라'.

이슬람교의 5대 교리엔 메카순례가 포함돼 있다.
이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매일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일생에 한번은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
마호메트는 가난한 집 유복자로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난다.
작은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배우던 마호메트를 눈독들인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돈 많은 미망인이었다.
결국 마호메트를 자신의 재산관리인으로 고용한 미망인은 16세 연하인 마호메트와 결혼에 성공한다.
마호메트는 그러나 40세가 되던 해 동굴속으로 들어간다.
삶과 인간에 대해 진지한 명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천정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 목소리를 한 자 한 자 아랍어로 적은 것이 바로 '코란'이다.
지금은 번역이 가능하지만 코란은 본래 번역을 할 수 없던 책이다.
이는 번역할 때마다 해석자들이 의견을 달리해 여러 종파로 나눠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사원의 모양은 한 가운데가 돔형식으로 솟아 있고 입구엔 큰 기둥 두 개가 세워져 있는 모습이다.
파르하니는 이에 대해 "기도할 때 이맘(목회자)의 연설이 잘 울리게끔 돔형식으로 설계한 것이며 두 개의 기둥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설파하는 장소로 '미나래'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파르하니를 따라 조금 더 가 보니 다양한 크기의 코란이 전시돼 있다.
화려한 금장식을 한 코란, 아기 손만한 코란 등 크고 작은 코란이 유리관 안에서 빛나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천은 메카의 중심점을 사방에서 휘감아 싸는 '카바'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바는 1964년에 사용한 것으로, 이슬람교도들은 매년 카바를 교체하며 한번 사용한 카바는 잘라서 나눠준다.
다른 한 켠엔 각국 무슬림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천의 일종인 '바틱'과 '카슈미르', '이카시' 등의 문양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도할 때 바닥에 까는 천, 벽걸이용 천, 이슬람왕조가 사용한 동전도 눈에 띈다.
에메랄드와 보석으로 장식한 칼은 인도이슬람제국의 유산이다.
도자기는 중국의 그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슬람교를 '회교'라고도 하는 이유는 뭘까.
회교란 말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만 쓰는 말이다.
중국엔 '회족'이란 민족이 있다.
그런데 이 회족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중국정부가 이를 격하하기 위해 회교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1시간 반여 박물관을 돌아본 인박협 일행이 다음 일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무슬림들의 먹거리에 대해 설명해준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쇠고기도 '할란'이라는 의식을 치른 고기만 섭취한다.
한번은 중동에 수출된 A라면과 B파이가 전량 회수된 적이 있었다.
라면에 할란의식을 치르지 않는 쇠고기가 들어갔고, 파이에는 돼지의 젤라팅을 사용해 머시멜로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이드는 "한국의 이슬람교도의 먹거리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 같다"며 "한국에서 할란식당을 차린다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슬람예술박물관을 나와 '경찰박물관'과 '섬유박물관', '시청기념관'을 거쳐 '국립이슬람사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45분.
이슬람사원으로 들어가려면 남자는 반바지만 입지 않으면 괜찮으나 여자는 반드시 히잡이나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
히잡은 이슬람여성들의 상징으로 초경때부터 써야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인박협 일행 중 여성들이 사원이 제공한 보라색천으로 몸을 둘둘 감고 입장하기 시작했다.
입구로 들어가는데 남자 하나와 검은 부르카를 쓴 여자 세 명이 뒤따라 나오고 있다.
가족들인가?
이에 대해 가이드는 부인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줬다.
이슬람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중 하나는 '남녀는 평등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슬림들은 '1부다처제'로 4명의 부인까지 둘 수 있다.
대신 네 명의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공평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만약 부인들간 차별을 할 경우 남편은 구속될 수도 있다.
한 번은 말레이시아에서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질문은 '만약 당신 남편이 4명의 부인을 얻는다면 몇 번째 부인이 되고 싶은가?'였다.
가장 많은 응답은 2번째 부인이었다.
이유인즉슨, 부인간의 서열이 매우 확실한데 첫번째 부인이 서열 1위이고 4번째 부인은 서열 4위여서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첫번째 부인은 관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서열이 높으면서도 책임이 가벼운 2번째 부인을 선호하더라는 것이다.
남자들 역시 부인을 많이 거느리려면 '재력'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게 1부다처제인 셈이다.
'이제 보니 별로 좋은 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무거운 돔지붕을 떠받치기 위한 것일까.
사원은 굵고 높은 기둥들이 무수하게 세워져 있다.
이 기둥은 유일신 '알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국립이슬람사원은 1만 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1965년 완공된 이 사원은 유일하게 이교도의 사원 방문을 허락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둥이 세워진 통로를 지나 예배당 앞에 서자 안에서 몇 명의 무슬림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디나 똑같은 법일까.
몇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숙이며 장난스레 기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원 내부는 18각으로 이뤄진 별모양의 돔이 있다.
여기서 18각은 말레이시아 13주와 이슬람교의 5가지 계율을 의미한다.
예배당엔 마호메트를 비롯, 어떠한 신의 형상도 찾아볼 수 없다.
본래 마호메트의 제자들이 마호메트의 형상을 만들려고 했으나 마호메트는 "나도 인간이다" "나도 신을 보지 못했다"며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안내자가 설명한다.
예배당을 지나 기둥을 따라 가자 묘지가 나온다.
사원엔 수상과 같은 높은 사람만 묻힐 수 있다.
이슬람교는 죽은 지 24시간 안에 묻을 것,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매장할 것, 관을 쓰지 말것 등의 장묘원칙을 갖고 있다.
왼쪽 어깨를 땅에 묻고 얼굴은 메카를 보게 묻는 것도 한 특징이다.
사원을 빠져나오는 이방인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꽃이 피어나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잘 알지 못 했던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이해의 꽃처럼 보였다.
/쿠알라룸푸르=글·사진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