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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해외 취재기/말레이시아

1. 이슬람과 유럽 문화의 결합 …"박물관은 살아 있다"

by 김진국기자 2016. 9. 22.

 

 

말레이시아 박물관을 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믈라카까지, 4박6일의 여정

인천시박물관협의회, 박물관 16곳 답사
전국 곳곳에 200여개 … 고색창연히 빛나
수백년 건물 즐비 '네덜란드 광장' 눈길


지금은 '인문학'의 시대.
21세기,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를 논하고 정조대왕의 궤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공자·맹자의 사상을 탐구하고 플라톤의 이데아를 꿈 꿔 보기도 한다.
왜 갑자기 인문학인가.
자연·사회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인류가 느끼는 공허함의 크기는 커져만 왔다.
그 알 수 없는 공허함은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가치나 자아가 과학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박물관'은 '인문학의 응집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유물은 물론, 인간의 사상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인천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가 지난 2013년 3월26~31일 말레이시아의 박물관을 탐사했다.
이 기간 대표적인 16개의 박물관을 살펴보며 '박물관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 나라 박물관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인천일보가 이번 답사에 동행했다. 세 차례에 걸쳐 말레이시아 박물관으로의 여정을 떠나본다.
물기에 젖은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의 하늘은 옅은 회색 빛깔을 띠고 있었다.
우기와 건기로 나눠질 뿐, 1년 내내 여름인 말레이시아의 3월 하순 기후는 인천의 한여름 날씨와 다를 바 없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두툼한 점퍼를 입고 있던 인천시박물관협의회(인박협) 회원들의 옷차림은 어느새 반소매 티셔츠와 맨살이 드러나는 샌들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박협 일행이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첫 여정을 시작한 건 현지시각 3월27일 오전 9시30분.
 "아빠 까바?(안녕하세요?)"
첫 방문지인 '말레이시아 국립박물관'에 닿았을 때, 여러 명의 현지 관계자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줬다.
말레이시아 박물관청 소속 공무원들이었다.
인박협 회원들이 방문한다는 얘길 듣고 마중을 나온 것이다.
히잡을 쓴 채 카메라플래시를 터뜨리는 여기자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붉고 뾰족한 삼각뿔처럼 생긴 지붕과 하얀 벽.
1963년 건립한 국립박물관 건물은 전통 말레이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박물관이 자리한 레이크 가든 남쪽 다만사라 거리는 시내 한 복판에 위치했다.
박물관이 세워지기 전까지 열대나무가 밀림처럼 우거진 곳이었다고 현지 관계자가 말해줬다.
박물관 마당 한켠에 전시된 마차와 증기기관차가 수십년은 지난 것처럼 보였다.
주석을 실어나르던 교통수단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 팔이 여러 개 달린 불상, 말레이시아 전통 옷 등 국립박물관은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유물들로 가득했다.
생활도구와 도자기에서부터 왕실 전통결혼식과 동식물의 표본, 전쟁 병기와 전통 악기 등에 이르기까지 전시관은 말레이시아의 악기와 문화, 자연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몇 개의 관을 돌아본 일행이 맞은 편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갖가지 모양의 탈이 일행을 맞았다.
갤러리에선 마침 '세계의 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디선가 서툰 한국말이 들려왔다.
박물관청 다또(DATO·귀족계급의 하나) 이스마일 청장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박물관 업무만을 관장하는 정부기구가 별도로 있었고, 이스마일은 한국으로 말하자면 박물관청 장관이었다.
그는 "본래 전시가 끝났는데 인천 박물관 관계자들이 온다고 해서 특별히 전시를 연장했다"고 말했다.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탈에서부터 소박하고 화려한 탈에 이르기까지 갤러리는 전세계의 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있었다.
관람이 끝날 때쯤 어디선가 영롱한 타악소리가 들려왔다.
박물관청장이 준비한 오찬자리에서 흘러나오는 '가밀란'(Gamelan) 연주소리였다.
일행은 말레이시아 전통음악을 감상하며 향이 강한 스프와 안남미, 쇠고기 등 전통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도중 흥에 취한 능화스님은 가밀란 연주단에 뛰어들어 즉흥 산조를 연주하고 범패소리를 해 참석자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스마일 청장은 환영사에서 "한국의 판소리가 아름답다"며 "인천에서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고 공무가 아닌 진심어린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귀례 회장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말레이시아를 보고 감동했다"며 "인천은 2014년 아시안게임을 앞둔 바다의 도시로 앞으로 말레이시아와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싶다"고 화답했다.
첫날 오후 일정은 '국립미술관' 방문. 3층으로 이뤄진 국립미술관은 1층 아트컬렉션만 빼고 2,3층에서 '라티프 모히든' 개인전을 펼치고 있었다.
72세의 라티프 모히든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로 1950년~2000년대 자신이 제작한 그림, 조각, 공예작품을 대규모 전시하는 중이었다.
이어 찾아간 '페트로나스 갤러리'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쌍둥이빌딩' 3층에 위치했다.
갤러리는 사진, 그림, 미니어처로 표현한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 50여개를 사진과 그림,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슬람예술박물관'을 찾은 건 방문 이틀째인 28일 오전. 인도의 타지마할, 메카의 알하람사원, 우즈베키스탄의 아미 티몰 능 등 이슬람예술박물관에선 전세계의 유명한 이슬람사원들을 모형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풍으로 지은 중국 시안의 이슬람사원은 상당히 독특해 보였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교도로 신고를 해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이슬람교는 말레이시아의 국교인 것이다.
이어 오전 11시30분쯤 '경찰박물관'에 도착했다.
경찰박물관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모든 것'을 진열한 채 인박협 회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니폼, 무기, 역대 경찰 수뇌부 사진, 비상시국에 경찰이 사용하는 장비 등이 다채롭게 전시한 풍경이다.
이 박물관은 1958년 지어진 목재 건물이다.
좋은 나무가 많은 말레이시아엔 목재건물이 많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일행은 동굴 같은 통로로 이어진 전시관을 따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현지 관계자의 설명을 경청했다.
재밌는 것은 경찰부인회라는 것이 있는데, 이 부인회에도 서열이 있다는 점이었다.
남편의 계급이 올라가면 부인의 위치도 높아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후 일정은 '국립섬유박물관'이었다.
붉은 벽돌과 석고를 번갈아 차곡차곡 쌓아 완성한 이 건물은 105년 전 영국식민지 당시, 영국인 건축가 허벡(A.G Hubback)이 지은 명작이다.
1층은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을, 2층은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가 즐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금을 얇게 밀어서 천에 붙인 금박옷이었다.
화려하다못해 현란해 보이는 의상의 잔상을 간직한 채 길 건너편 '시티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쿠알라룸푸르의 역사를 그림과 사진으로 만나는 곳이다.
2층에 마련한 쿠알라룸푸르란 도시의 축소모형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국립이슬람사원'에서 둘째 날 일정을 마감한 일행은 29일 아침 '믈라카'(Malacca)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믈라카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의 거리.
팜오일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따라 닿은 곳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네덜란드광장'이다.
 '역사민족학', '문학', '건축', '총독', '해양', '술탄 궁정' 박물관과 '독립선언관' 등 네덜란드 광장엔 수백년 된 고건축물들을 저마다 특색 있는 박물관으로 고색창연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 박물관들을 차례 차례 돌아보며 일행들 사이에선 "스파르타 훈련을 받는 것 같다"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다"는 애교섞인 불평이 흘러나왔다.
네덜란드 광장엔 수백년 전 지어 건물형태만 남은 건축물도 눈에 띄었으며, 베카(Becca)란 자전거마차가 이채롭게 다가왔다.
현란한 꽃으로 수를 놓은 베카는 자전거에 2~3인승의 마차를 붙여놓고 열심히 관광객들을 실어날랐다.
마차를 탄 사람들의 웃음이 장식꽃처럼 화사하게 빛났다.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일행은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마지막 일정인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신행정도시 '푸트라자야'(Putrajaya) 방문을 위해서였다.
자연사박물관은 이제 막 조성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유물이 빈약한 편이었다.
호랑이, 사슴, 곰과 같은 동물의 박제와 곤충표본 등이 전시품의 대부분이었다.
일행은 관계자들이 마련한 다과를 먹고 푸트라자야를 돌아본 뒤 크루즈에 올랐다.
인박협 일행은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가이드조차 "이런 융숭한 대접은 처음 봤다"고 놀랄 정도였다.
이는 인박협의 위상과 함께 박물관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을 문화인들로 높이 평가하는 풍토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푸트라자야는 인공섬으로 만든 신행정수도이다.
1997년 조성을 시작해 오는 2030년까지 계속되는 마하티르 전 총리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다.
마하티르가 처음 이 곳에 신행정수도를 조성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그러나 마하티르가 가장 먼서 수상관저와 이슬람사원을 지은 뒤 정부기구가 하나 둘 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하티르는 특히 이 곳에 건물을 짓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세계 각지로 보냈다.
마하티르는 이때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건물을 하나씩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가져온 건물모양은 말레이시아식 건물로 탈바꿈해 하나 둘 세워진다.
타지마할묘를 닮은 대법원건물과 같은 것들은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푸트라자야 크루즈 승선을 끝으로 인박협 답사단의 일정이 모두 끝난 시간은 30일 오후 7시쯤.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귀례 회장은 "우리는 이 곳에 쌍둥이빌딩을 보러온 게 아니었다.
외국의 박물관을 견학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힘을 얻어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러 왔고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며 "수만리 떨어진 곳에 우군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유대감과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푸트라자야 식당의 식탁 위로 붉은 석양빛이 비쳤다. 노을에 물든 걸까, 아니면 4박6일의 일정에 젖은 것일까.
인천시박물관협의회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붉은 빛깔로 상기 돼 있었다.
/쿠알라룸푸르=글·사진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 말레이시아는 …

고온다습 동남아 열대국가 … 연간 2700만명 관광객 다녀가


말레이시아는 연중 고온 다습한 열대나라다.
연평균 기온은 21~32도이고 강우량은 2000~2500㎜에 이른다.
낮에는 30도를 웃돌다가도 밤에는 선선할 때도 있다.
여느 동남아국가와 달리 말라리아가 없으며, 이미지도 다르다.
입헌군주제인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상징인 국왕이 수상과 내각을 임명한다.
이 나라는 주석과 팜유, 석유를 생산해 수출하며 제조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연간 관광객만 2700만명에 이르는데, 이중 인구 30만의 '믈라카'에 연간 1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말레이시아 인구는 약 2500만명으로 50%가 말레이인들이다.
중국계가 24%를 차지하며 인도계는 8% 정도다.
나머지 유럽계는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통치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계의 후손들인데 대부분 믈라카 주거 지역에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 땅은 우리나라 면적의 3.3배에 이르며 국토의 4분의 3이 밀림과 습지대로 구성됐다.
마하티르 전 수상은 특히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인물로 여러가지 신화를 남겼다.
22년간 집권한 그가 그만둘 때 국민들이 "더 해달라"고 조를 정도였다.
그의 큰 업적은 신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를 건설과 쌍둥이빌딩 건립으로 요약된다.
이 밖에도 명민한 지도력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말레이시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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