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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온라인저널리즘 기사/2016인하저널리즘89

안갯속 행복 오래전 어느 날엔가 소원을 담아 풍등을 날렸다. 여름, 밤, 바다. 빛. 기분 좋은 바람이 지나가고 우리는 한껏 달떴기 때문에, ‘행복하게 해주세요.’ 앳된 손이 멋쩍게 적어내리는 소원에도 누구하나 유치하다 놀리지 않았다. 그 날도 이렇게 뿌연 안개가 발목까지 뭉쳤다. 가끔 일이 안 풀리면 어린 날 그 소원이 안개 속에 길을 잃었나보다, 그렇게 탓을 했다. 야, 짐짓 어른스러운 얼굴로 누군가 타이른다. “가장 좋은 건 안개 속에 있을 때야.” 모든 게 명확해지면 재미가 없다고. 사랑도 사람도 꿈도, 가물거릴 때가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아- 술잔을 부딪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이지 않으니까 좇을 수 있는 거구나. 안개를 헤치며 걷는 길이 조금 즐거워졌다. / 언론정보학과 김혜원 (http://yo-bi.. 2016. 11. 21.
신발, 나를 담다 신발, 나를 담다 사람들은 대개 마주 앉는다. 밥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 이야기를 나눌 때. 활발한 이야기가 오가는 테이블 아래로 신발들도 마주 본다. 한 번도 빨지 않아 검정 때가 가득 묻은 운동화 맞은편엔 꼼지락대는 발가락 사이에 매달린 쪼리가 있다. 나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주로 운동화만 신는다. 내 운동화들은 대부분 더럽다. 새 신발의 빳빳함보다는 내 땀으로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신발이 좋아서다. 내 친구는 슬리퍼를 자주 신는다. 운동화는 발이 답답하단다. 종류도 다양하고 슬리퍼치곤 고가인 것들도 있다. 문득 신발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의 정갈함, 오래된 신발도 정성스럽게 신을 때의 소박함, 운동화의 쾌활함은 그 신발들에 은은하게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안.. 2016. 11. 21.
막내삼촌 10년 전이었다. 봄이 파도처럼 밀려오려던 3월, 막내삼촌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렸다.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가버렸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외가 친척이 사는 전남 광주와 고흥을 찾았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잘 돼있어서 4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당시엔 4~5시간은 기본이었다. 지루할 법도 했지만 조부모님과 삼촌들을 만날 생각에 마냥 신이 났었다. 내게는 삼촌이 세 명이 있다. 막내삼촌을 비롯한 삼촌들과 함께하는 일주일은 여름을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였다. 당시 삼촌들은 주택 2층에서 살았다. 누나와 매형, 조카들이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2층 난간에 기대어 서서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곤 했다. 그럼 나는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부터 차창을 열고.. 2016. 11. 21.
꼬마기차와 소래포구 꼬마기차와 소래포구 갯내음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먼저 반기는 곳, 인천 소래포구역에 도착하면 바다향이 마중 나온다. 바다에서 1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소래포구역에는 주말이면 삼삼오오 모여 나들이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들뜬 얼굴로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부터 해산물과 젓갈을 사기 위해 오신 어르신들까지 소래포구를 찾아온 이들은 다양하다. 소래포구는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소래포구도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소래포구에서 수원, 월곶, 송도 등 다른 지역으로 소금을 옮기고 주민들의 왕래를 도왔던 협궤열차는 버스보다 좁은 2m 남짓의 폭 때문에 꼬마기차라고 불렸.. 2016.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