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72

인천부청과 인천중구청 시민들에게 개방한 인천항 제8부두를 뒤로하고 응봉산 방향으로 시선을 던진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 3층 건물 하나가 옆으로 길게 앉아 있다. 흰색의 가로 벽과 베이지색의 벽돌기둥이 씨줄날줄처럼 얽힌 서양 모더니즘양식 건물이다. 그 위에 얹혀진 무수한 초록빛들. 한여름 물기를 머금은 응봉산 나뭇잎들은 지금 한껏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건물은 금메달리스트, 나뭇잎들은 월계관처럼도 보인다. 인천 중구 신포로 27번 길 80 '인천중구청'. 응봉산 중턱에 이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1933년이다. 완공 당시엔 '인천부청'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인천시청이라고 보면 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02년 이 자리엔 '일본영사관' 건물이 똬리를 틀었었다. 조선을 삼키기 위해 벌인 청일전쟁(1894~1895년.. 2016. 9. 15.
도립인천병원과 인성여고 세상을 녹이기라도 할 것 같은 폭염의 기세가 등등한 2016년 7월 하순. 신포동을 출발, '홍예문길'을 따라 2차선 도로를 걸어 오른다. 홍예문을 지나기 직전 왼편으로 교문이 하나 나온다. 홍예문로 39. 인성여자중고등학교다. 방학 중인 학교운동장엔 여학생들 대신 건설기계 한 대만이 웅웅 소리를 내며 여름 한낮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여름 한 철을 지내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운동장은 다시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할 것이다. 인성여중고 운동장이 있던 자리엔 71년 전,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아치형으로 창문을 내고 가운데가 뾰족한 모임지붕을 한 2층짜리 건축물이었다. 세련된 겉모습과는 달리, 이 건물은 사실 조선인들에게 공포의 공간이었다. 뚜벅 뚜벅! "아~악!" 홍예문 고개를 넘기 위해 건물 .. 2016. 9. 15.
일제강점기 해운회사, 예술센터로 부활 저 외벽은 황해에서 불어온 바람의 더께가 아닐까. 바람과 비, 햇살을 온몸으로 맞아온 100여년의 시간. 그 세월 동안 사각형의 '의양풍'(擬洋風) 건물은 누렇기도 하고 베이지색 같기도 한 불균질한 색으로 빛 바래 있었다. 그 빛깔이 오랜 세월의 평지풍파를 다 겪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건물 외벽에 착색한 얼룩마저 아름다운 무늬처럼 비친 것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기 때문이리라.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인천아트플랫폼 관리사무동'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서양식 건물에 일본 특유의 건축양식을 덧씌운 이 건물의 앞모습은 좌우대칭형이다. 출입구 윗부분엔 삼각형 장식물인 '페디먼트'가 얹혀져 있고 출입구 양쪽에 서 있는 2개의 기둥이 견고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풍긴다... 2016. 9. 14.
서양잡화 팔던 곳, 지금은 유흥주점으로 '신포동'이란 이름으로 널리 불리는 인천 중구 중앙동, 신생동, 관동, 해안동 일대는 인천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동네이자 인천의 대표적 중심가다. 지금은 부평과 구월동으로 인천의 중심지가 일부 분산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인천의 중심'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신포동'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곤 한다. 최근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낙후된 도심 지역에 문화 예술인들이 들어와 새로운 공간을 창출, 상권이 활성화되자 땅값과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다. 실제 신포 로데오 거리 입구-중구청-개항장 거리-차이나타운의 건물가격은 2~3년 전에 비해 약 1.5배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포동엔 여전히 유서 깊은 식당들이 즐비하며 다복집, .. 2016.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