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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강화도의 역사, 문화, 행정

by 김진국기자 2017. 12. 4.

 

 

 

 

 

 강화도가 '민족의 성지'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화도엔 우선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흔적이 역력하다.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린 '참성단', 그의 세 아들이 축조한 '정족산성'. 이 같은 사실만 봐도 강화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라 할 수 있다. 단군은 어째서 고조선의 그 많은 땅 가운데 강화도를 택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강화도의 비옥한 자연환경 때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코넬리어스 오스굿 역시 단군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화의 이야기는 기원전 3000년 전의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한국인의 조상인 단군은 두 개의 제단을 지었는데 하나는 강화도 남쪽 마리산에,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재단에서 북쪽으로 12마일쯤 떨어진 1000피트 정도의 봉천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남쪽 마리산의 것은 '참성단'이고, 봉천산에 있는 것은 '봉천대'를 가리킨다. 여기서 참성단은 단군신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봉천산에 있는 봉천대는 단군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인다. 봉천대는 고려시대 축리소에서 나라에서 제천의식을 행하던 제단으로 사용됐다. 고려 중엽 봉씨의 시조 봉우의 5대손인 봉천우가 선조의 발상지인 하음에 조상을 구해준 은혜를 찬양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정방형 사다리꼴 모양으로, 밑넓이 7.2m에 높이는 5.5m이다.
 강화도는 남북을 통틀어 나라의 인후라고 할 수 있다. 고려왕조가 배수의 진을 치고 결사항전을 벌인 우리나라 최후의 땅, 병자호란, 신미양요,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국난을 가장 앞에 서서 막아낸 땅도 강화도였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와 황해의 경기만이 만나는 우리나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어귀에 위치한 강화도는 비옥한 어장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다. 강화도 땅은 기름진 편이어서 경작지가 연해지역안의 충적지와 간척지, 저구릉지를 합해 강화도 전체 면적의 43.6%를 차지하는데 그 중 39.6%가 농경지다. 강화군은 강화섬쌀을 비롯해 인삼, 고추, 영지버섯, 감, 순무 등 농산물과 새우젓, 김 등이 특산물이다.
 강화도엔 현재 1읍 12면 186개리에 6만8010여 명이 살고 있는데 1947년은 조금 달랐다. 오스굿의 기록에 따르면 1947년 당시 강화도엔 14의 면과 부락이라고 할 수 있는 '구'가 275개 존재했다. 구는 지금의 '리'이다. 한 구엔 6개의 반이 속하는데 강화도엔 1565개의 반이 있었다. 1947년 강화군수는 경기도 지사가 임명했으며 경기도지사는 남한 임시 입법부의 승인을 얻은 뒤 정부가 뽑았다. 군은 면장을 뽑았으나 1946년11월 15일 포고에 의해 면장은 80명의 주민에 의한 선거에 의해 선출됐다. 면장은 정부로부터 월급을 포함해 경제적 지원을 받는 정치적 피라미드 조직의 최하위 직책이었다. 이에 비해 구장은 면사무소가 공출한 곡물의 일부를 급여로 받았다. 이는 다시 반장과 나누어야 했다. 반장은 마을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며 나이가 어려 많은 짐을 지고 갈 수 없을 때조차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마을의 수장들은 힘이 없으며 단지 시스템의 상징, 중앙집권화의 상징으로만 존재했다. 면장은 상급자들을 기쁘게 해야 하는 동시에 지역공동체의 진정한 지도자들과 접촉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술을 계속 마시다가 죽지 않는다면 그는 행운아라고 적은 것을 볼 때 당시 행정조직의 술문화를 추축할 수 있다. 오스굿은 강화군의 경찰서장은 경기도의 상관들을 통해 서울의 명령을 따라야 했으며 경찰서장은 큰 마을에 있는 경찰의 사적인 숙소에서도 명령을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과 사가 선명하게 구분돼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70년이 지난 지금 강화군은 통일시대의 수도권 관문도시, 남북한을 연결하는 서해안 경협벨트의 최적지로 떠올랐다. 교육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현재 21개의 유치원, 23개의 초등학교, 11개의 중학교, 8개의 고등학교와 2개 대학교, 1개 대학원이 있다.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