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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인천내리교회와 하와이이민

by 김진국기자 2017. 4. 26.

교회 첨탑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에 봄비가 내린다. 삼각형의 교회 지붕 위에도 내린다. 봄비는 붉은 외관의 교회건물을 흠뻑 적시는 중이다.  

동인천역을 등지고 신포시장 쪽으로 걷다보면 만나는 '내리교회'(인천 중구 우현로67번길 3-1)는 용동큰우물거리 건너편, 짧고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한다.

봄비 내리는 날 찾은 교회 입구엔 천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 안에서 몇몇 부녀자들이 토스트를 굽고 커피향도 피어난다.  

교회 관계자는 "매주 화요일 교회 앞 도로변에서 토스트나눔행사를 하고 있다"며 "택시기사나 일반인들에게 토스트와 커피를 나눠주며 전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리교회 역사는 132년 전인 1885년 시작한다. 부활절이자 주말이던 그 해 4월5일 오후 3시 미국 북감리교회의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는 인천항에 첫 발을 디딘다. 아펜젤러는 이튿날 서울로 가려 했으나 갑신정변의 여파로 '대불호텔'에 머물다 4월13일 일본으로 간다. 아펜젤러는 두 달 뒤인 6월20일 다시 인천으로 온다. 그는 7월19일까지 인천에 머무는데 이 기간은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아펜젤러가 서울로 떠나던 7월19일을 내리교회 종교 집회의 시작으로 보고 교회 창립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 교회를 1887년 9월27일 언더우드 목사가 세운 정동 장로교회(현 새문안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인천내리교회가 한국 개신교 사상 최초로 세워진 교회인 것이다.

신자를 확보하기 위해 내리교회는 교육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인다. 아펜젤러에 이어 교회를 맡은 존스 목사는 교회 안에서 강재형 전도사 부처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친다. 학교의 모양이 돼 가면서 이름을 '영화학당'이라 짓고 교사도 늘린다. 영화학당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내리교회 건물은 처음 1891년 짓기 시작, 건물 외부에 석회를 바르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로 마감했다. 바닥엔 마루를 깔았고 방은 2개였는데 단순하게 설교단만 있었다.

손장원 인천재능대교수는 "33.1㎡(10평) 정도의 집에 두 개의 방을 배치했기 때문에 예배공간엔 설교자를 제외한 성인 12명 정도 앉을 수 있었다"며 "이후 신도가 늘어나면서 여신도를 위한 별도의 예배당을 세웠고 1900년엔 도원동에 75㎡의 규모의 임시교회도 세웠다"고 <인천근대건축>에서 밝히고 있다.  

1901년 12월 구 교회를 허물고 벽돌조로 십자형의 새건물을 세웠으며 다시 이 건물을 허물고 1955년 10월9일 착공해 1958년 12월22일 연면적 1067.8㎡ 규모의 새로운 건물을 세웠다.

내리교회 본당 옆 비탈진 언덕에 붉은 벽돌로 지은 예배당 제물포웨슬리관은 수년 전 미국 뉴저지연합감리교가 소장한 도면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첫 이민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하와이 군도로 누구든지 일신이나 혹 권속을 데리고 와서 정착하고자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편리함을 공급하노라 … 기후는 온화하야 심한 더위와 추위가 없으므로 각인의 기질에 합당함 … 월급은 미국 금전으로 매월 십오원(일본 금화 삼십원 : 대한돈으로 오십칠원 가량)씩이고, 일하는 시간은 매일 십 시간동안이요, 일요일에는 휴식함 …' 

1903년(고종 40) 8월6일 인천, 서울, 부산, 원산 등에 나붙었던 하와이 '이민공고문'은 날씨가 좋고 학비가 없어도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등의 달콤한 문구를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낯선땅으로의 이주는 불안한 것이었다. 이민을 머뭇거리던 사람들에게 인천내리교회 담임목사 '존스'(George Heber Jones·1867~1919)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이민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떠난 이민자의 절반이 내리교회 신자들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원시(G.H.Jones) 목사를 쓰시어 1903년 1월 13일 미주땅에 한인 디아스포라를 허락하셨다. 그 해 11월 10일에 인천내리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하와이 한인감리교회를 설립하니 해외에 설립된 최초의 인천내리교회 지교회이다 ….'  

교회의 붉은 벽돌담 동판에 쓰여진 문구에 봄비가 흐른다. 교회의 뜰,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 아펜젤러와 그의 후임 존스 목사, 한국인 최초 목사 김기범의 흉상 위에도 봄비가 내린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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