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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봄이 깃든 인천여상

by 김진국기자 2017. 4. 24.

봄이 깃든 교정에 뚝뚝 떨어진 목련꽃잎들이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바람을 맞은 벚꽃잎들이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인조잔디를 깐 운동장에선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원반 던지기를 하고 있다. 목련처럼 환한 여고생들의 웃음이 운동장에 메아리친다.

"사랑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데 한 여고생이 인사를 건네온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그러나 싫지 않은 인사말이다.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인천여상, 인천시 중구 인중로 146)엔 성큼 봄이 와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교정을 걷는데 실습동 앞에 부도처럼 보이는 '석탑'과 돌기둥 모양인 '석주'가 서 있다. 그 아래로 석축 같은 주춧돌도 여러개가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는 모르겠구요. 아무튼 일본 관광객들이 오면 여기에 서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더라구요."  

"일제 강점기 일본 신사의 흔적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혜리 행정실장이 대답해준다. 이것들은 모두 1890년 6월 17일 들어선 '인천대신궁'의 흔적이다. 인천대신궁은 개항 뒤 몰려든 수천여 일본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던 건물로 그들의 조상신을 받는 곳이다. 그로부터 30년 뒤 총독정치가 자리를 잡으며 일제는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 '인천신사'였다. 인천사람들에겐 먼 발치에서나 볼 수 있는 '기분 나쁜' 곳이었으나 일본인들의 인천신사는 봄이면 벚꽃놀이로, 가을엔 신사제로 일본인들이 들끓었다.  

일본인들은 이 자리를 '동공원'이라, 각국공원(자유공원)은 '서공원'이라 이름붙였다. 인천사람들은 그러나 '팔팔로'라 불렀다. 일천신사 경내에 야사카로(八阪樓)란 일본요정이 있었는데 1889년 수명루와 명월루란 작은 요정들을 합해 대연회장까지 갖춘 큰술집이었다. 인천사람들은 이 술집을 한글음역으로 '팔판루'로 부르다가 나중에 부르기 쉽게 팔팔로로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태범 박사는 1996년 3월 펴 낸 <인천 한세기>에서 "지금의 교문(현 실습동건물 자리)에 돌로 만든 조그만 홍살문 같은 '도리이'(鳥居)가 서 있었고, 들어서면부터 광장까지엔 잘 다듬은 돌길이 있었다. 길 양쪽과 경계선 밖에는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험한 땅이 군데군데 그대로 남아 있었고, 길가와 광장 주변에는 벚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다"고 팔판루를 회상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은 이 곳에서 축하·승전기원·애국일 행사 등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인천공립여자상업학교가 개교한 때는 건물들이 모두 헐리기 전인 1945년 4월 1일이다. 일본인들이 세운 학교였다.  

광복을 맞으며 인천신사의 주요 건물들이 헐렸으나 일부는 남아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이 말해줬다. 남아있던 건물은 요정인 '팔판루' 건물이었다. 이나리신사, 코또히라궁, 텐만궁 등 인천신사 경내의 건물은 그러나 1945년 광복 직후 사람들의 손에 부서졌다. 팔판루 건물만 남아 미군의 방첩대(CIC) 본부 사무실로 사용됐다.

이후 이 곳엔 하나 둘 건물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학교모습을 갖추게 됐다. 인천여상의 정문은 본래 지금의 실습동 앞이었다. 2002년 학생들이 실습을 하고 밥을 먹는 '실습동' 건물이 들어서면서 정문은 오른쪽으로 옮겨간다. 인천항 방향 이마트옆 대로엔 나 있는 문은 정문이 아니라 차량들만 오가는 '차문'이다.  

실습동 앞 옛 정문을 살펴본 뒤 교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서 벚꽃나무. 목련을 만난다. 개교 이후 72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봄의 꽃씨처럼 무수한 학생들이 인천여상을 거쳐 당당한 사회인으로 우뚝 섰다. 2017년 4월 재학생 1059명의 특성화학교로 자리매김한 인천여상은 회계금융과, 국제통상과, 경영사무과, 디지털정보과 등 4개의 과에서 인재들을 배출 중이다. 2016년 이 학교의 취업합격률은 61.14%. 이들은 금융권, 공기업, 대기업, 중견·중소 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운동장을 뛰노는 여고생들의 웃음이 봄날의 꽃잎처럼 날아다닌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