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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율목동 새동네의 어제와 오늘

by 김진국기자 2017. 4. 11.

'역사문화 중심도시 비상하는 관광중구' '율목동 주민센터' 건물 이마에 붙은 푯말이 봄햇살을 받아 게으르게 빛나고 있다. 연두색과 형광색을 섞어놓은 듯한 건물외벽이 독특한 빛을 발산한다.

 '2017 자유공원문화관광축제 기념 KBS전국노래자랑 자유공원서 4월 21일 오후 1시 개최.' '미아를 찾습니다.' 

센터 앞 안내판에 붙은 홍보포스터들이 행인들에게 즐겁게, 혹은 우울하게 말을 걸어온다.

율목동 주민센터 오른 편 '율목로 8번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율목로 8번길은 승용차 2대 정도가 지날 수 있는 폭으로 뻗어 있다. '긴급차통행로'라고 쓴 고딕체의 노란글씨가 골목바닥에 큼지막하게 내려 앉았다. 골목에서 본 하늘은 시커먼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얼키고설킨 모습이다. 양 옆으로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선 이 길에 과거 '기와집'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 많던 한옥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구본영 율목동 통장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 부자들이 살던 곳으로 1980~90년대 초까지 한옥들이 수십여 채 있었으나 서정화 국회의원 당시 주거환경개선지구 사업을 하면서 빌라업자들이 평당 150만원 하던 땅값을 350만원으로 올려주자 하나 둘 집을 팔고 나갔다"며 "과거엔 부자동네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한 세대가 살던 자리가 12~13세대가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이 곳은 밤만 되면 주차전쟁을 치른다.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 혹은 '율목동'으로 부르던 이 곳에 한옥이 들어선 때는 1930년대. 당시 서울 명륜동의 한옥주택가를 따라 한옥을 지었고 '새동네'란 이름을 붙였다.

신태범 박사는 <인천 한세기>에서 "1910년도 통계에 의하면 율목동은 호수 235채, 인구 1049명으로 내동과 함께 부자촌 쌍벽을 이루며 기와집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미리 해득한 일어를 무기 삼아 부산에서 올라온 영남상인이 중심이 돼 1906년 조직한 미곡 중개업체인 '근업소'가 대표적 한옥건물"이라며 "율목동은 근업소를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부산 등 영남사람이 주로 모여 있었고, 내동에는 이미 빈집이 없어 자리를 잡지 못한 각 지방사람들이 찾아 들었는데 내동보다 저명인사가 많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근업소 건너편 23번지 한옥은 훈맹정음의 창시자 박두성 선생의 자택이었다고 전한다. 근업소는 1906년 농상공부가 허가한 쌀 중개업소였다. 1940년 폐쇄됐지만 1970년까지만 해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때문에 율목동은 '근업소말(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율목동 8번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빌라숲 한 가운데 대감처럼 자리잡은 기와집이 하나 나타난다. 율목동 새동네의 마지막 기와집인 양재복씨 집이다. 대문 앞으로 다가가 지번을 살펴본다. 인천직할시 중구 율목동 245 11통 3반, 율목로 16-64. 양 씨 집엔 두 개의 주소가 달려 있다. 벨을 눌렀는데 응답은 없고 장독대에서 머리를 내민 바둑이 한 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댄다. 한옥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리모델링을 했는지 외벽이 말끔하다. 창문 역시 하얀 쇠창살로 덮여 있다.

율목동은 1900년대까지 인가가 드문 구릉으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조성했던 곳이다. 이후 '율목풀장'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

율목공원 뒷편 '율목도서관'은 전 일본 정미업자 '리끼다께'의 별장이었다. 1942년 도서관으로 개조했으며 1962년 신관을 준공해 인천시립도서관으로 사용했다. 시립도서관이 2008년 말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이 곳은 운치있는 작은 도서관인 율목도서관으로 시민들을 만나는 중이다. 인천의 대표적 부촌이었던 율목동 새동네는 이제 빌라촌으로 이방인을 맞고 있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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