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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

by 김진국기자 2017. 4. 5.


'꿈과 희망과 미래가 있는 인천 유일의 IT특성화 고등학교,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

제물포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넘어오는 6차선의 참외전로의 왼편. 둥글게 말린 건물 외벽 맨 윗층에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란 글씨가 파랗게 빛나고 있다.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 192(율목동 4의 1) 인천정보산업고는 IT특성화 고등학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청년실업률이 넘쳐나는 시대. 이 학교는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을 책임지는 미래일꾼을 길러내는 중이다. 이 학교는 2006년 정보통신분야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받았다. 이후 전산·통신·전자·로봇응용 과를 운영하며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준비 중이다.

인천정보산업고가 이 자리에서 개교한 때는 1995년이지만 이 자리는 개항 이후 무수한 학교들이 거쳐간 곳이다. 인천정보고 이전엔 중앙초등학교가, 더 이전엔 지금은 주안에 있는 인천고등학교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3년엔 인천공립상업학교, 1922년엔 인천남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이 향학열을 불태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을 비롯해 인천은 '신식교육'의 발상지였다. 포교를 위해 개신교가 가져온 것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었던 것이다.

1885년 인천항에 도착한 아펜젤러는 서울에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제학당'을 설립하는 한편, 인천에선 '내리예배당'을 통해 선교활동을 펼친다.  

1892년 아펜젤러는 내리예배당의 운영을 조원시(존스) 목사에 넘겨준다. 2대 목사인 조원시 목사는 지금의 내리교회에서 강재형 전도사와 함께 남자 어린이 3명, 여자 어린이 2명을 모아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신식학교의 태동이었다. 

남학생을 가르친 학급은 훗날 '영화학교'가, 강 전도사의 부인이 담당한 여학생들 학급은 '영화여자학교'가 된다.  

1894년 이들은 세운 '영화학당'엔 남학생 50명, 여학생 20명이 공부를 했고 교육공간도 확장한다. 우리나라 최초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의 출발이었다.

영화학당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1900년대 초부터 단발을 하고 검정색 교복을 입으며 개화에 앞장선다. 나팔과 북, 고물소총 등으로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학동들의 질서정연한 제식훈련모습은 이색적인 구경거리였다. 

 

인천남공립상업학교, 인천공립상업학교, 인천고교, 중앙초교 거쳐
1995년 인천 유일 IT특성화고 '인천정보산업고' 들어서
인천, 최초 서구식 초등교육기관 '영화학당' 등 태동 … 향학열 후끈




종교나 관학이 아닌 순수한 민간학교도 있었다. '제녕학교'는 러일전쟁(1904~1905) 직후 인천신상회사 서상빈 사장이 세운 학교다. 신학문과 영어 등을 가르쳐 개화기 일꾼을 길러내려 했던 서 사장은 러일해전에서 침몰한 '바리야크호'의 인양으로 거금을 쥔 김정곤의 도움으로 내리에 30평 초가를 얻어 학교문을 연다.  

이 학교 주간반은 신학문 전반을 교육했고, 야학에선 장면 박사의 부친 장기빈씨와 인천해관 직원이던 강준씨 등이 영어를 가르쳤다.  

정부가 세운 관학의 역사에서 인천고등학교를 빼놓을 수 없다. 인천고등학교는 1895년 4월 고종황제가 선포한 교육칙어에 따라 1895년 6월 27일 인천감리서(중구 내동 84번지)에서 '관립인천외국어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한다. 인천 관학의 효시였다. 일본어가 주 교육내용이었지만 수신, 한문, 수학, 지리, 역사, 이과, 정치, 경제, 법률, 부기, 체조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과목을 가르쳤다.  

이 학교는 1904년 교육행정의 주도권이 일제로 넘어가며 관립 인천일어학교(1904), 인천실업학교(1909)로 이름을 바꾸다 1933년 인천남공립상업학교와 합쳐지면서 지금의 인천정보산업고 자리인 율목동 신축교사에 자리를 잡는다.  

인천남공립상업학교는 일본인 청년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1887년쯤 영국인을 초빙해 만든 '인천영학사'가 시초였다. 인천영학사는 이후 1908년 인천상업야학회, 1922년 인천남공립상업학교로 개명한다.  

인천신식교육의 역사가 흘러간 자리에 서서 인천정보고 교문을 바라본다.

"철커덕, 철커덕!" 

오른 편으로 경인선 지나가는 소리가 증기기관차의 그것 만큼이나 우렁차게 들려온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