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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경찰서가 도서관으로

by 김진국기자 2017. 9. 20.

장맛비가 한 차례 쏟아진 뒤 여름햇살이 얼굴을 드러낸 오후 홍예문로. '꿈벗도서관'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건물 앞에 선다. 아담한 3층 건물벽면에 도서관이 펼치는 프로그램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경쾌하게 펄럭인다.  

장애인을 포함해 차 3대가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전부인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간다. 1층에서 직원들이 사무를 보고 있다. 1층 어린이열람실에 그림책과 아동책이 울긋불긋 전시돼 있다. 영·유아도서와 원서, 북토리도서, NFC(책소리)도서, 다문화도서를 갖춘 곳이다. 2층으로 올라가자 여러 교양도서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마치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의 한 풍경처럼 보인다. 2층에선 청소년과 성인들이 볼만한 책과 연속간행물, 애니메이션과 같은 멀티미디어 자료를 만날 수 있다. 3층은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독서지도법에 대한 강연, 체험행사 등이 열린다.  

'작은도서관'인 꿈벗도서관은 중구가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으로 매달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겨울독서교실(1월), 도서관주간 행사(4월), 가정의달 행사(5월), 요즘 같은 여름철은 여름독서교실, 개관기념(8월), 독서의 달(9월), 문화의 달(10월) 행사가 그것이다. 자료실별로 테마전시와 이벤트가 펼쳐지며 주말엔 영화를 볼 수 있다. 문화가 있는 날 행사와 인문학 특강도 주요 프로그램이다.  

지금 꿈벗도서관에선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로 18개 공공도서관이 참여하는 독서진흥운동인 '북스타트'도 한창이다. 영유아 독서습관 형성을 위한 조언을 해주는 강연, 인형극, 책교환 장터 개장 등이 주요 내용이다. 꿈벗도서관은 지금 '책 읽는 중구'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8월8일 개관한 이 도서관의 이용객은 이래봬도 한달 2700여 명에 이른다. 이규원 대리는 "도서관 규모는 작지만 공공도서관의 기능과 형태를 똑같이 갖추고 있다"며 "책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나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중구 홍예문로에 있는 이 꿈벗도서관 바로 위 홍예문로 34의1 '고려맨션' 자리엔 과거 인천경찰서가 있었다. 

일본 인천경찰서의 시작은 1882년 일본 인천영사관 부속경찰서다. 청사와 부속건물이 영사관 안에 있었으나 일본이 총독정치를 강화하면서 1923년 경찰서를 지금의 꿈벗도서관 위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건물에 대해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건물 중앙부가 돌출된 벽돌조 2층 건물로 외부장식은 거의 없고 1층 정면엔 출입구 2개를 설치했는데 중앙부의 돌출된 부분엔 주출입구를 두었고 좌측에 부출입구를 두었으며 창문상부는 평아치로 처리했다"며 "2층 창문 하부에 일정하게 배열된 환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 바닥은 나무마루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저서 <인천근대건축>에서 밝히고 있다.  

인천경찰서는 당시로선 가장 큰 관청이었다. 건물규모도 그랬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한 탄압에 있어서도 끔찍한 전쟁범죄가 벌어지던 지옥같은 곳이었다.

신태범 박사는 "광복이 되기 전까지 20여년 간 고등계가 앞장서서 갖은 악행으로 선대의 피와 눈물을 짜낸 곳"이라고 "지나가기조차 꺼리던 지겹고 무서운 건물이었는데 광복 후에도 하는 수 없이 계속 사용하다가 1978년에야 항동으로 신축 이전하고 속시원히 헐어치웠다"고 <인천중구의 옛풍물>에서 회상하고 있다. 

광복 뒤 이 건물은 인천경찰서, 중부경찰서, 수상경찰 파출소 등으로 사용하다 1978년 이전하면서 헐린 뒤엔 연립주택이 들어섰다.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는 일본순사가 우리 민족의 고혈을 짜 내던 경찰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미래를 꽃피울 도서관으로 태어났다. 지난 달이 호국보훈의 달이었다.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라야 했던가. 도서관을 등지고 나오는데 강렬한 망중한의 장마철 햇살이 얼굴을 뒤덮는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